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시면서 우리의 오른뺨을 쳐도 보복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과 긍휼과 불쌍히 여길 수 있다고 하셨다. 이 문제는 상식으로도 세상의 법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 큰 사랑을 안다면 납득과 이해가 되는 것이다. 물론 예수 안에서 구원 받은 자만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용서에 관하여 말씀하시면서 비유를 사용하셨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받은 자와 일 백 데나리온 빚진 자의 이야기이다. 한 달란트의 단위는 금 30Kg을 나타낸다. 이것을 데나리온으로 계산을 하면 6,000데나리온이 된다. 그러니 일만 달란트라 함은 6,000만 데나리온이 된다. 그 당시 종들이 하루의 일당이 1데나리온이었다. 1년 동안 쓰지 않고 저축을 하면 300데나리온을 모울 수 있다. 그렇다면 원금만을 갚는데 20만 년이 걸린다.
 
이것에 대하여 실감이 나게끔 하기 위하여 달러로 환산을 하면 이렇다. 하루의 일당을 100달러라고 한다면 일만 달란트는 6,000밀리언(Million)이고 되고, 6빌리언(Billion)이 된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숫자로 표현을 할 수 없다. 그 사랑은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둔한 백성이며, 돈을 좋아하기에 어쩔 수 없이 구원의 크기를 숫자로 표현을 하여 이해와 납들을 시키는 것이다.
 
주인에게 종이 탕감을 받는데 그 액수가 일만 달란트를 탕감을 받았다. 그 종이 풀려나 길에서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게 된다. 그러자 일만 달란트 탕감을 받은 자가 100데나리온 빚진 자를 감옥에 집어넣는다. 그 사정을 친구들이 보고 그 종의 주인에게 가서 있었던 일을 보고한다. 그러자 주인이 일만 달란트 탕감을 받았던 종을 다시 부른다.
 
그리고 화를 낸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는 질책이었다. 동료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 종은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게 된다.
 
주인은 종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빚을 탕감하여 주고 자유를 주었다. 그런데 종은 자기 탕감을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종이 탕감을 받은 액수는 우려 6빌리언(Billion)이다. 동료가 빚을 진 액수는 일 만 달러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 구원의 크기를 이해하기 위하여 비유로 사용하지면, 자그만 치 6빌리언(Billion)이 되는 것이다. 그런 반면에 나를 대적하고 공격하는 자의 죄값은 일만 달러가 된다.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아는 자는 액한 자를 대적하지 않고, 용서할 수 있다.
 
아직도 원수를 사랑하지 못하고 이웃의 잘못으로 인하여 싸우는 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모르는 자이다. 또한 구원받은 하나님의 구원에 크기가 얼마나 큰지를 모른 것이다.
 
내가 천사가 하는 말을 한다고 해도 이웃을 향한 사랑과 용서가 없다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감격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내가 받은 사랑과 내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면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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