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기독교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상함과 피흘림이다. 그런데 이교도에서도 성경의 도덕과 윤리성을 인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내용만 말하는 것이다. 만일 예수님이 가르침만하시고 십자가에 피를 흘리지 않으셨다면 구약의 예언이나 하나님의 약속은 거짓이 된다. 이교도들은 성경의 우수성은 인정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은 인정하지 않는다.
 
십자가의 사건은 의문의 율법을 페하시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몸을 찢기심으로 인하여 지성소의 휘장이 갈라지게 된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의인이 되어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흘림의 사건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받은 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중생하지 아니한 자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런데 기독교가 지적인 면을 요구하는 현대 사회와 대화를 시작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을 강조하지 아니 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세상도 십자가만 강조하지 아니하면 함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서 이웃을 사랑하자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의 사랑을 외치는 단체인 것 같지만 그 안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다면 곤란한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기 전에는 이웃 사랑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먼저 인간이 어떠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을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
 
, 하나님을 아는 자만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사랑은 일부러 하는 겸손이요, 거짓의 평화협정이 되는 것으로 인류의 역사 가운데에서도 나라와 나라가 평화의 협정을 맺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 못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다.
 
그런데 기독교가 십자가를 외면한 사랑을 전하고 있고, 심지어 교회에서도 십자가의 설교를 외면하고 있다. 전하는 자나 듣는 자가 서로 부담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 한다. 만일 십자가의 설교가 없다면 우리의 죄사함도 없는 것이 되고, 우리의 사랑도 거짓사랑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가 없는 설교를 듣고도 거룩함을 유지하며 사랑할 수 있다는 신자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설교는 재미있어야 하며, 목사는 코미디언이 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재미있고 웃기는 하였지만 죄사함이 없어 거룩함이 없고 인격이나 삶의 변화는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흘림이 없이는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하나님 앞에도 나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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