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요즘 뉴스를 통하여 들을 수 있는 것은 죽음의 공포에 대한 소식뿐이다.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오염된 식품들, 화학공장에서 새어나온 가스로 인하여 농작물이 말라비틀어진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은 이미 예견이 된 일이다. 그것에 반발하는 이유는 주어진 삶의 길이는 다 채우고 죽겠다는 것이다. 즉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죽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죽음을 연장하기 위하여 먹어야 한다. 결론은 먹다가 보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의 입에서는 살고는 있지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넋두리로 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인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가 첫 째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일 것이며, 두 번째는 자신이 예상하였던 년 수 보다 빨리 오는 황당함이다.
 
이러한 현상들이 남녀노소가 없다. 요즘은 젊은이들에게도 치매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중풍이라는 것도 나이가 든 사람에게서 나타난다고 알고 있었는데, 어린아이들에게도 있다고 한다. 즉 죽음은 정해진 법칙을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누구도 피하여 갈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 가운데에서 죽음을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어도 오히려 죽음이 피해가는 날이 있다.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을 하시는 날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날인데,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들은 영원한 영생의 영광을 누린다. 이와 같은 영광에 참예하게 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을 얻게 되는 것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셨던 새 생명이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관계이다. 이 연합에 대하여 포도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우리의 이해를 돕고 있다. 줄기에 가지가 붙어 있으면 생명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생명을 소유하고 있는 자는 죽음을 구하여도 죽을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죽음이 피하여 간다는 것이다. 신자들은 이 약속의 말씀을 믿는다. 그리고 그날을 소망 가운데 기다린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떠한 환난에도 담대할 수 있다.
 
요즘 같은 때에는 누구도 자신의 앞날에 대하여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또한 사람들을 낙심하며 좌절 가운데 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기쁨이 있다. 예수 안에 있으면 어느 누구도 신자의 기쁨을 빼앗을 수 없다는 말씀이 우리를 담대하게 한다.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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