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교회에서 나누어지고 있는 사랑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도 사랑을 한다. 어려운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베푼다. 그것을 동정이라고 한다.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여겨 딱하고 가엾은 마음을 가짐으로 도와주는 것이다.

신문이나 TV를 통해서 알려지는 선행이 있다, 거액을 기부하면서도 익명으로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어려웠던 지난날이 생각나서 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여 도움을 베푼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도와주는 것은 같겠지만 사랑을 주고받은 후에는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것은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선행을 베풀고 나면 다시 그 일에 대하여 거론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신자들 가운데는 선행을 하고 공치사를 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 자기를 자랑할 때면 그동안 선행을 베풀었던 모든 일의 이야기를 다 한다.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만나기만 하며 하는데 들을 때 마다 인내를 요구한다. 이야기의 결과는 자기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이미 그 사람은 굶어 죽었다는 것이다.

선행을 베풀 때에 도움을 받은 당사자에게는 아픔과 부담이 된다. 선행을 자랑하는 자의 전리품이 되는 결과가 된다. 그러다 보니 두 사람의 관계는 좋은 관계가 아닌 적대적의 관계가 된다. 이러한 일들이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 교회를 떠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사랑을 하지 않는다. 사랑을 전하고 선행을 하였지만 결국에는 이웃을 죽이고 마음이 아프게 하는 자리로 갔고, 자기의 자랑으로 간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입은 자는 남을 가엽고 딱한 마음으로 다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큰 사랑을 입은 자로서 감사한 마음으로 간다. 은혜를 맛본 자로서 은혜의 자리로 올라오게 하기 위함이다. 내 것을 가지고 나를 자랑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들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러 가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들의 믿음의 고백은 그리스도의 은혜가 근거가 되어 감사와 찬양을 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친다.

예수님이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시는 그날, 임금이 양과 염소를 구분하고 복을 받을 자들을 부르신다. 그 때에 복을 받는 자들은 놀란다. 언제 우리가 그런 일을 했냐고 한다. 그러면서 임금이 칭찬을 한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행을 하였다는 것이다.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어려운 자에게,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행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는 선행이다. 나의 유익이나 목적을 두고 행하는 선행은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이방인도 하는 사랑이다. 아직도 이것을 분간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들의 믿음은 어린아이의 수준이 되는 것이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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