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교회와 목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행위는 설교이다. 설교는 회중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여 거룩한 곳에 서서 거룩을 향하여 나가야 한다. 그래서 성경의 말씀을 전달하는 행위를 하는 자가 설교자이다. 설교자는 언어를 가지고 이해와 납득을 시키기 위하여 비유나 예화를 사용하기도 한다.

또한 설교를 잘 듣기 위하여 예배의 여러 요소들이 있다. 즉 예배의 순서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때에 설교 부탁을 받고 가면 가급적이면 짧게 해 달라고 하는 때가 있는데 이것은 아주 곤란한 것이다. 또 어느 곳에서는 찬양은 오래 많은 시간을 갖는데 설교 시간은 고작 몇 분에 불과하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는 말들이 많다. 죄로 인하여 진노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말씀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즉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고 높여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

요즘 예배의 형태나 형식은 하나님에게 초점이 맞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추어져 있다. 모든 것이 내가 좋아야 하고 마음에 들어야 한다. 그래서 내 스타일에 맞는 곳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고 죄의 문제로부터 해결책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를 자기의 카타르시스를 해결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신자들이 있다. 즉 예배를 통해서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무속신앙이다. 자기중심적이고 우상숭배의 근원인 탐심으로 인한 것이다.

설교는 모인 회중의 성격에 따라 말씀을 전하는 방식이나 방법이 달라 질 수 있다. 왜냐하면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삶 속에서의 고민이 있기 때문이다. 즉 죄로부터 오는 고통과 고민이다. 그래서 말씀으로 피할 길을 찾는 것이다.

설교는 좋은 내용이나 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설교가 신자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진정한 설교가 아닌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전하고, 그 말씀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전하여야 한다.

인간의 참된 고통은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한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어두움의 고통에 있고, 죄와 허물로 죽었다고 하며, 영적으로 눈이 가리워졌다고 한다. 이것이 성경에서 일관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것을 해결하고 피할 길을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성경의 말씀을 만홀히 여기겠다는 것은 어이가 없는 것이다.

어두움 가운데 있는 우리가 빛으로 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고 빛으로 된 자들은, 빛으로 살기 위한 생명을 공급받아야 한다. 받아야 하는 것이 말씀이다. 그런데 말씀을 받지 않겠다니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교회나 목사는 예배의 형식에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 말씀을 전하는 일에 신경을 써야 한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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