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



우리가 기도 할 때에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라고 한다. 만일 이렇게 기도하시는 분은 이 문장으로만 끝을 낼 것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찬양받으실 구체적인 이유를 고백하여야 한다. 그 이유는 청년들이나 청장년들이 기도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교회의 믿음의 어른들의 기도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들은 대로 따라 하기 때문이다.

시편의 기자들은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다스리시고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시고, 이방나라들을 멸하시는 내용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신자들은 더 큰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고 약속을 받은 자들이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의 시편을 지었던 자들보다는 더 큰 찬양과 감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들의 찬양과 감사의 고백이 시편의 저자의 고백에 머물러 있다면 곤란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찬양의 내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문장의 내용이 멋있어서 따라하다가 언젠가는 이해하는 때가 온다. 그것보다는 청년 때에 올바른 이해를 통하여 더 깊은 믿음 가운데로 들어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서 자유인이 되었다면,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유인이 된 것이다. 또 그들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교회가 있고 아름다운 가정이 있다. 이미 우리들도 얻어서 찬양할 수 있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을 잊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찬양이 우리들의 찬양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찬양의 내용에 더 해져야 한다. 분명히 우리에게도 임하셨던 은혜가 있고 지금도 함께 하시고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있다. 이것에 대한 분명한 감사와 찬양이 있어야 한다.

미국 땅으로 이민을 온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태평양을 자기가 만든 돈으로 비행기 타고 건넜다고 생각을 하면 감사의 믿음은 생기지 않는다. 자기의 고생과 수고로 인하여 여비를 마련하여 비행기 타고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이 하신 일은 없는 것이다.

이민생활에서도 피땀을 흘리며 돈을 모았다고 한다. 그렇게 수고하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었다. 또 수고한 대로 열매를 주셨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뭐가 있냐고 따지며 징징대며 울고 있다.

우리말에 지지리 궁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릴 수 있는 상황인데도 스스로 고민을 하고 어려운 상태로 만들어 가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의 신자들이 이러한 상태에 있는 것 같다. 신자는 모든 것을 받은 자이고 약속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매일 하나님 앞에 나와서 징징대기만 한다.

내가 부어주신 감사한 것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찬양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드리는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나에게도 약속을 주셨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감사의 찬양을 생각 없이 드리는 것보다 나의 감사의 찬양을 드리는 것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신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시 1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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