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자기의 생각대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패망한 북이스라엘이나 남 유다나 하나님을 믿었다. 그런데 그들이 망하였다. 망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저 그들이 불순종하였다고 간단하게 말한다. 불순종하였다고 하는데 그들은 분명히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는 아주 좋은 제물로 드렸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이 된다. 구원을 얻고 구원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그 다음은 주인과 종의 관계가 된다. 그래서 주인은 종에게 요구를 한다. 주인으로서 종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함이다. 그 종의 삶과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인의 말에 순종을 하여야 하고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만일 종이 주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주인과의 관계가 파기가 된다. 종은 스스로 살 수가 없는 자이다. 누군가가 거두어 주어야 살아갈 수 있다. 이와 같은 원리 하에서 구원 안에서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예수 안에 있는 말씀에 순종을 하고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어떤 종이 주인의 마음을 외면하고 자기의 생각과 뜻으로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오늘날 교회 안에 이와 같은 신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주인님은 가만히 계시고 내가 알아야 할 터이니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내가 무엇을 할 때에는 이름을 빌려 주시고 돈을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한다.

문제는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뜻이 같은지를 확인하여 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보기 원한다고 기도도 하고 찬양도 한다. 이번 주는 고난 주간이다. 고난 주간에 주님의 행적을 보게 되면 그 당시의 제사장들과 장로들, 민족의 지도자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만났다.

그들도 역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었고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메시야가 그들 앞에 계셔도 그들은 알아보지 못하였다. 자기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를 기다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살피면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주님을 만났던 가룟 유다로 마찬가지이다. 주님을 만나도 주님과 합한 자가 되지 않으면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인들의 실수는 종으로서 종의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종이 아주 건방져져서 주인을 부르는 처지가 된 것이다. 주인이 부르면 달려가야 하는데, 반대로 내가 부르면 주님이 나오라고 한다. 주님이 부르는 교회의 예배 시간에는 종이 바빠서 가지 못하니, 종이 한가해 지면 나아가 주인을 부르면 그 때 만나자는 것이다.

심지어 교회 가는 것이 귀찮아 집에서 예배드리는 자들도 있다. 더 이기적이고 더 우상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이제는 내가 부르면 나타나라는 것이다. 내가 필요에 따라 부리겠다는 욕심이다. 교회에 그리스도가 계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교회를 세우셨다.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은혜의 복을 약속하셨다.

그리스도의 순종을 배워 하나님 앞에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순종을 본받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 생각의 순종으로 나가려 한다. 이것이 잘못된 것이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자칭 믿음이 좋다고 하는 자들이 모이기만 하면 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기들의 믿음대로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배우는 곳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배워 십자가에 죽음의 자리까지 나아가는 곳이다.

요즘 누가 하나님의 이름을 두려워하는가? 입으로는 두려워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의 믿음은 내가 할 일 다 하고, 내가 잘 것 다 자고 남는 시간에 하나님도 찾고 교회도 온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늦은 밤에도 아니 이른 새벽에도 총알 같이 나간다. 그러나 새벽예배는 피곤해서 못 나간다.

참으로 한심한 처사이다. 이런 신자들이 점점 더 늘어나니 답답한 노릇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하고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복을 받은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교회에 출석 잘하고 복 받은 신자들을 주변에서 찾아 볼 수도 있다. 아직도 게으른 자들은 성경의 약속과 말씀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자들이 믿음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말이 많다. 이러한 자들은 마치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하던 제사장과 장로들과 같은 자들이다. 주님을 만났지만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들의 생각으로 따지려 하였다. 그리고 자기들의 생각과 틀리자, 모여서 죽이기로 의견을 모았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예수님의 뜻과 다른 자들이 많이 모여 있다.

신자는 찬양과 기도 속에서 예수님과 합한 자가 되어야 하는데, 주님 나타나라고 소리소리 치고 있다. 설령 주님이 나타나도 나와 뜻이 다르다고 하여 외면을 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종이다. 주인이 아니다. 종은 주인의 말을 듣는 자이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는 것이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마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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