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신자라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지 에는 관심이 없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의 욕심만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한다. 즉 하나님의 뜻에 합한 자가 되는 것을 말한다. 신자가 죄를 짓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거나 아니면 뜻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따르지 못함을 말한다. 그러니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자면 하나님이 하라, 하지 말라 한 것이 있다. 먼저는 이것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것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다.

세상 사람들도 양심에 근거하여 도덕과 윤리의 법이 있다. 이 법을 어기게 되면 적절한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 신자가 지켜야 할 법의 크기나 내용은 세상의 법 보다 훨씬 더 크다. 세상의 도덕과 윤리의 법은 인간의 의를 근거한 법이다. 사람이 지킬 수 있는 한계를 정하여 놓고 지키는 자는 자랑의 자리로 가고 지키지 못한 자는 정죄와 비판의 자리로 간다.

그러나 신자들이 지켜야 할 법은 다른 사람을 정죄나 비판의 자리로 몰고 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생명과 거룩의 자리로 가게끔 한다. 신자는 거룩한 법을 지켜서 자신도 생명의 자리로 가고 다른 이웃도 생명의 자리로 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는 자랑의 자리가 아니라 섬지는 자리로 간다. 그러니 신자들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죄를 지을 수 있는 자리로 간다는 것을 아는 자이다.

이러한 신자의 삶에서 교만이나 부족함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가 자비와 긍휼을 구하는 것이다. 어떤 신자들은 당당하게 말한다. 자기는 죄에 대하여 별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것이 없고, 기도도 5분만 하면 더 이상 용서를 구할 것이 없다고 한다.

또한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오셔서 약속을 하셨다. 그래서 그 약속을 얻을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만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나신 하나님에 대하여 설교를 하는 것이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용서와 부족을 간구하고 말씀을 통하여 부족함을 채우고 감사와 기쁨을 얻는다. 그러니 하나님을 만난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기다려지겠는가?

그릇된 신학자들에 의하여 예배의 본질과 중요함을 희석되고 있다. 아무데서나 예배를 드려도 되고 아무나 설교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신자들이 교회에 가기 싫으면 집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그리고 형식만 있고 의미가 없는 예배는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거듭난 자들이 드리는 찬양과 순종과 겸손함이 있는 것이다.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을 믿고 감사와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우리들의 예배는 천국에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천국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광경을 이해하고 믿는 것을 말한다.

요즘 신자들이 예배 중에 하는 행동은 하나님 앞에서 너무 무례하다. 휴대폰 전화를 끄지 않음은 물론이고 심지어 걸려오는 전화를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통화를 한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과 세상의 일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예배에 감동이 없다.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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