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친구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우호적이고 평화의 상태를 유지할 때에 쓰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런 친구의 관계가 나중에는 적대적으로 또는 상대로 할 수 없는 원수의 관계로까지 비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 남자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가까이서 교제하며 지낼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약 천 명 정도가 된다고 하는데, 결국에는 경조사에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로 정리가 되어서 친구의 관계라 하더라도 계산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주변에 친구가 있는데, 자기중심적으로 사귀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술을 마실 때에 친구가 있고, 낚시나 골프를 갈 때에 필요한 친구가 있고, 여행을 떠날 때는 먼저 알아서 굿은 일을 척 척하는 사람을 택하여 함께 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자기중심적으로 친구를 상대한다는 것을 친구에게 속마음을 들켰을 때에는 친구의 관계가 멀어지고 때로는 분노를 발하는 일도 일어나곤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민생활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을 정말 어렵다고 합니다. 한 때는 우호적인 관계이어서 편안하게 대했던 것들이 나중에는 불화살로 돌아와 많은 심적인 고통을 겪었기 때문에 이제는 친구를 사귄다는 것도 일종의 모험을 하는 것과 같아서 두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사건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가 더불어 평화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불어 평화적인 관계는 양쪽이 함께 평화를 누린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으로 인하여 우리를 평화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고, 우리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평화적인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평화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우호적이고 평화의 관계가 되었다는 것은 이제 같은 편이 되어서 같은 목적, 하나의 목적을 향하여 같이 나갈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같은 편이고 우호적이고 평화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고 어떠한 일을 하시려 하는지를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이나 모세, 또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친구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친구라는 단어를 쓰셨는데 이것이 같은 지위나 동등한 능력으로 표현을 한 것이 아니라, 이것은 오로지 서로 간에 비밀이 없는 우호적인 관계라는 데서 사용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을 하시려 하는지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려 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세상에 보내셔서 죄인들을 향한 진노의 불 심판을 준비하셨고, 또한 택한 자들을 위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구원을 받은 자만이 믿을 수 있고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자기의 고집으로 사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일을 믿지도 아니하고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이나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려 하는 일을 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하심과 계획에 대하여 더 알고 싶다면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우호적이고 평화의 관계를 유지하여야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갖고 계시는 계획을 친밀하게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믿고 있는 신들은 자기의 계획이나 하는 일을 알려 주지 않고 때에 따라서 심술이나 진노를 발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과 다른 것이고, 우리의 하나님은 신실하게 말씀하시고 말씀하신 데로 이루어 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모든 자녀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필요에 따라서 사람을 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의 은혜를 찬양하고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면서 진정한 친구의 관계를 갖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나가는 동일한 목적을 갖은 자를 택하여야 하는 것이 지혜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과 예수를 믿는 자들은 목적과 방향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평화적이고 우호적인 관계에서의 친구의 관계는 나의 생각과 친구의 생각이 같으므로 인하여 속이거나 속임을 당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친구의 관계가 나의 조건이나 상대의 원인에 의해서 친구의 관계가 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남의 조건과 원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으므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성품이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의 공동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자기의 생각이나 고집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싸움의 원인은 각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고집과 생각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친구 된 자들이 생각을 하여야 하는 것은, 지금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고 무슨 일을 하시는지, 어떠한 지위에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을 하며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때만이 친구로서 관계가 성립이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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