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한국교회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여러 곳에서 외치고 있다. 문서선교를 통하여 이미 위기에 처한 교회들을 진단하는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우리들 모두의 책임이라 생각을 한다. 경제 이론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교회도 운영을 하였기 때문이다.

한 동안은 설교가 재미있어야 한다고 해서 정말로 웃기는 설교를 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설교자들이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정통적인 설교는 교인들에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에서이다. 일주일의 삶이 어렵고 힘든데 주일날 교회에서까지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 웃기는 설교를 들었는데 삶이 기쁘게 변했는가를 생각하여 보자는 것이다. 들을 때에 잠시 기뻤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영원한 기쁨을 전하는 곳이 교회이다. 교회는 생명이 있는 자가 생존하기 위하여 생명수를 얻는 곳이다. 즉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나아와 생명을 얻는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은 자들의 모임이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들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 구원은 받았지만 어리석은 자들을 위하여 성경 속의 인물들을 동원하여 교훈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의 앞에서 무지하여 자기의 고집대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여 복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이 땅의 모든 것들이 피조물이며, 이것을 창조하신 분이 있다, 그래서 피조물은 창조주의 섭리를 따라야 하며, 명령과 뜻에 순종하여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가르치는 곳이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사건을 전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타락한 피조물들을 창조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의 교회는 공연장이 되었고, 연예인들의 장기 자랑을 하는 곳이 되었고,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고 유행하는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곳이 되었다. 지금에 와서 이러한 것들을 거부하고 외면을 하니 사람들이 떠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본질의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아도 사람들은 모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외치자 떠나는 자들이 생긴 것이다.

교회를 떠나서도 의에 주린 자의 반응이 없다면, 즉 생명수를 공급받지 않아도 스스로 살아 갈 수 있다고 한다든지, 죄를 지어도 신앙의 양심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따른 사람이 아닌 것이다.

교회 안에서 전하여지는 말씀은 세상의 학문이나 철학으로 알 수가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인간의 지혜로 된 지혜나 인간의 생각인 철학을 전한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는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고, 그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을 실습하는 곳이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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