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히 모든 성도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찬송가 가사에 보면 작사한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글로써 표현을 하는데, 하늘을 두루마리로 삼고 바다를 먹물로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다는 찬양이 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고백은 불과 몇 장의 감사로 끝을 낼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사랑에 대하여 할 말이 참 많다. 자기들이 경험한 첫 사랑, 짝 사랑, 배우자를 만난 사랑, 부모님의 사랑에 어떠함을 말하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에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랑 때문에 사람들은 울고 웃고, 싸우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곤 한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사랑 타령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은 묘한 것이라 믿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도 않고 영원한 사랑이다. 완전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사랑이기에 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창조주요, 조물주이신 하나님이 피조물인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 크신 사랑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으로 우리가 있는 곳까지 내려오셨다.

내려오신 이유는 우리를 아들로 삼으시기 위함이다. 아들로 삼으시고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의 일을 같이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십자가의 사랑이라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이 있다.

우리도 찬송가의 작사가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한없이 기록하며 찬양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느끼는 감성적인 사랑만으로는 부족하다. 삼위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이루신 뜻을, 이 땅위에 이루시기 위한 계획이나 일하시는 비밀을 알므로 찬양할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어 동굴 속으로 피하였는데, 사울이 동굴 밖에 까지 추격을 해왔다. 그 와중에도 하나님께 기도를 드린다. 다윗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살기로 마음을 정하였다고 하였다. 즉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다윗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지켜줄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한 것이다.

다윗이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으로 알아서 그의 마음 속 깊이 뿌리가 내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지식으로 알 때에는 믿음의 뿌리가 더 깊이 내려서 견고한 터가 형성이 되어서 세상의 풍파가 불어도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더 확실한 것은 지난 이 천년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하나님의 큰 사랑에 갈증을 느끼며 목말라 하는 신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능히 모든 성도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엡 3:17)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