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니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하는 가운데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대로는 세상에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지혜와 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겸손해야 하고 양보를 하면 남는 것도 없고 돌아오는 것은 이용만 당한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그 방법이 결국에는 승리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가르침의 내용은 십자가의 도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모든 것들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것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순종을 하신 것이다. 그 순종이 십자가의 죽음의 자리까지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뜻에 따라 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죽음을 이기시기 위함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죄의 권세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사망의 권세 앞에 신음하며 두려워하고 고통을 받는 인간들을 구원하는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다. 즉 사망을 이기셔야 사망에서 고통 받고 있는 인간들을 구하여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망은 모든 것이 끝이다. 그 사망 속에서 이겨야 한다. 예수님이 죽으셨는데 그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것이다. 이것을 부활의 능력이라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의 도를 따라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겸손과 섬김으로 산다. 그것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은 이 땅에서 낮은 자의 지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결과가 나타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 땅 위에서 당당하고 즐겁고 기쁘게 삶의 목적지를 향하여 가고 있다.

기독교의 삶의 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을 하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하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는 순종을 요구하고 있다. 만일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피흘리시고 세운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회에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내 안에 있는 자아를 내어 버려야 한다. 그러나 교회를 오래 다니고 열심히 기도의 생활을 한다고 할 찌라도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세상에게 지는 것 같지만, 처음에는 사망에게 진 것 같았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능력이 임하므로 인하여 최후의 승리를 얻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고 자기의 고집으로 버티는 사람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새벽예배는 죄가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자기의 고집을 버리고 순종을 배우기 위함이다.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한 사람들은 그 만큼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가 되어야 함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길이 최후의 승리를 얻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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