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하나님은 구원을 시작을 하시고 구원의 완성을 이루신다. 우리 인간들은 행위로나 지혜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데 여기서의 순종도 자의로서의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분부에 따른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미쁘신 뜻을 이루시는데 그것을 우리들을 통하여 이루시겠다는 것이다. 이루시려하는 것이 우리를 거룩하게, 즉 흠이 없고 순전하게 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상에서 흠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이와 같은 말씀을 전하면서 너희의 믿음을 위해서라면 전제의 제물로 자신을 드릴 수 있다고 하였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자 혼란이 일어난 것이다. 영적인 지도자가 감옥에 있음으로 인하여 복음의 내용을 의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확인을 시키려 하는 것이 내가 감옥에 있어도 복음은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너희의 믿음이 더 확실하게 되기 위하여 내가 죽어도 좋다는 것이다.

바울이 죽으면 복음의 전파가, 복음의 사역이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즉 내가 죽어도 복음이 계속 전해지고 있는 것을 확인시킴으로 인하여, 그 일을 하나님이 하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 위함이다.

지금도 하나님이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일하고 계심을 믿게 하기 위하여,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의 믿음을 위하여 죽을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우리도 실망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는 것은 구원의 완성이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기에 안심하고 기뻐할 수 있는 것이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양의 음성을 듣고 가지만 주변에 보이는 유혹적인 독이든 풀이나 실족할 수 있는 험한 길을 살피며 가야 하는 것이다. 신자들도 이와 같은 길을 가게 된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이라 하지만 삶의 의미는 날마다 다른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며, 그 뜻을 이루어야 한다.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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