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믿음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나 자신을 위하여 사용을 할 수 있고, 남을 위하여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자신들만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남을 위한 믿음을 소유한 자들이었다. 즉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일하심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이 일이 오히려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유익이 되었다고 한다. 빌립보 교회 교인들은 이방인을 위한 복음 전도로 바울이 택함을 받았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이 감옥에 갇히게 되자 그들은 커다란 실망감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바울은 이 일을 통하여 복음에 능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복음의 능력은 하나님에게만 있다.

바울이 하고자 하는 말은 자신에 감옥에 가더라도 너희가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올바로 안다면 앞으로 남은여생을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그의 몸에 채우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모진 핍박을 받아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 것도, 또한 교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교인들이 확인하였다고 한다.

바울은 자기 자신 하나만을 지킨 믿음이 아니라, 그의 몸에 나타난 여러 상처와 고통의 흔적으로 교인들의 믿음을 강건하게 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믿음에 유익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을 받아드리겠다는 고백이다.

우리들의 믿음은 나 하나만을 지키는데 급급하다. 아니 아주 이기적인 믿음을 가지기도 한다. 교회생활에서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이다. 교인들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고 좋은 말만 해주기를 바란다. 이와 같은 믿음은 성경 어느 곳에서도 소개되지 않는다.

성경이 말하는 신자는 나를 통하여 교인들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다. 교인들이 나를 놀려서 기쁨이 있고 재미있다면 바보가 되어 주면 된다. 믿음이 크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는 자칭 믿음이 좋다고 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자기의 자존심을 세우는 자들이다. 자신들의 잘남을 인정하여 주지 않으면 난리가 나는 사람들이다.

다들 다윗이나 바울처럼 좋은 믿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속마음은 다윗이나 바울이 사람들 앞에서 높이 들림을 받았을 때를 기억하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나 바울은 정작 그와 같은 일들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인자하심을 감사하며 찬양하고 있다.

신자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 믿음을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빌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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