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82:8)

 시편 82편은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재판관들에 대한 심판이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재판관들에게 말씀하시길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16:19)

 하나님의 공의가 시행됨으로 인하여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재판관이 뇌물을 받으면 판결이 굽게 되는데 권력과 돈 많은 자들만이 잘 사는 세상이 된다. 만일 재판관이 불의를 행하게 되면 의로우신 재판장인 하나님께서 심판을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를 누리며 각 자가 맡은 책임을 지며 사는 나라는 하나님 나라이다. 죄와 억압에서 자유롭고 의로운 법을 스스로 지키며 사는 나라를 이루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 왕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맡기셨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왕같은 제사장의 직분은 하나님 나라의 의로운 통치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그 통치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여긴다. 즉 사회공동체에 내가 중심이 아니라 이웃이 중심이 됨을 말한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는 율법사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왜 이렇게 질문을 하는가를 살펴야 한다. 율법사 주변에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의 비유로 이웃에 대한 개념을 밝히시고 있다. 강도당한 자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제사장도 레위인도 아닌 사마리아 인이었다.

 이제 율법 교사에게 질문을 하신다.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10:36) 그러자 율법 교사의 대답은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10:37)

 즉 친구 관계를 넘어서라는 것이다. 친구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인 성격을 갖는다. 즉 내가 어려울 때에 도움을 받고 네가 어려울 때에 도움을 주는 관계라는 것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사랑은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주는 것을 말한다. 이유와 조건이 없다. 그래서 어려움을 당한 자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회공동체를 세우기 위하여 신자들에게 왕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주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공의는 이웃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의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주는 것이고, 이웃을 나를 위하여 이용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움이 되고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서 험담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선행을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이대로 행하지 아니 하시면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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