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니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니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창 40:8)

우리 속담에 '꿈보다 해몽이 좋다'라는 말이 있다. 많은 꿈들이 있고, 각기 일어나는 현상들이 있다. 꿈과 현상은 하나인데 해석은 참으로 다양하다. 그래서 지금은 해석으로 인한 혼란을 겪고 있다.

신자들은 그렇지 않지만 불신자들은 자신이 꾼 꿈을 들고 점쟁이를 찾아 간다. 돈을 내 놓으면서 듣는 것이 해석이다. 그런데 점집마다 그 해석이 다르다. 결국에는 자기가 원하는 해석이 나올 때까지 찾아다니게 된다.

오늘 본문에도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굽는 자 두 사람이 하룻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창 40:5). 꿈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그 꿈을 해석할 자가 없어서 고민을 한다. 왜냐하면 저들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점쟁이를 찾아 갈 수 없는 것이다. 그 때에 요셉이 선뜻 나서서 내가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여 줄 것을 말하고 있다.

왜 그런가 하면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생사화복을 손에 쥐고 계신다. 그런데 세상의 점쟁이들은 다룰 수 있는 관점은 성공과 액땜을 방출하는 정도이다. 감히 인생의 생명과 영생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결과적으로 떡굽던 관원장은 죽고, 술 맡은 관원장은 살게 된다. 요셉이 꿈 해몽을 잘하였다는 것을 전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각 사람의 운명을 쥐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해석을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들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을 하셔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은 이 세상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지금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꿈 해석에 관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생명도 주관하시고 사망도 주관하시고 계시는데 그것에 기준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에게는 사망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들이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아서 안심이 되지만 아직도 그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지 못한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셔야 합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