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8:6)
 
유다 왕 아하스가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웃 나라의 힘을 택하였다. 그 표현을 실로아 물을 버리고 앗수르의 큰 하천을 택하였다고 한다. 큰 하천의 물은 크게 보여도 음료로 마실 수 없다. 만일 마시게 되면 탈이 난다.
 
유다 왕의 영적인 분별력이 없다는 것이다. 큰 물이라 할지라도 마실 수 없는 물이면 생명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신앙생활을 할 때에 먼저 생각하여야 할 것이 영적인 것과 세상의 것을 분별하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좋은 씨와 나쁜 씨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쁜 씨를 뿌리게 되면 열매가 없는 가라지를 생산하게 된다. 농부에게는 헛수고가 되는 것이다. 성급하고 분별력이 없는 신자들이 범하게 위한 실수이다.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상태에서 열심을 다하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한다. 본인도 힘들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도 피해를 끼치게 된다.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살피는 일이다. 그것을 알아야 바른 길을 갈 수 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하스는 영적인 분별력이 없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배신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따르는 실수를 한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들은 교회의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는 일이라면 헛수고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써먹으려고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목적으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으로 만들어서,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을 나타내시려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결단코 여러분의 생각이나 열심히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아하스 왕은 하나님이 친히 말씀을 하셔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의 눈에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보다 이웃나라의 군사력이 더 크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주관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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