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봄이 오면 꽃이 핀다. 겨울에는 나무의 겉모습으로는 어떤 나무인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꽃이 핍으로 나무의 존재를 나타낸다. 꽃으로 어떤 나무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실나무는 뜨거운 햇살과 여름 폭풍을 이기고 열매를 맺으므로 위대함을 나타낸다.
 
사람들 사이에서 존재감이란 주관적이다. 나보다 더 강하고 개성이 강한 사람이 있으면 존재감이 사라지고, 짧은 순간이지만 강렬하게 존재를 나타낼 때는 부각이 된다. 그래서 사람마다 존재감을 나타내려고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표출시킨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착한 행실로 존재감을 나타내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라 하셨다. 빛과 소금에 대한 해석을 여러 가지로 하고 있다. 세상이 부패 하지 않게, 부정을 밝히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보다 더 성경적인 해석은 소금은 짠 맛을 내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소금은 어떤 다른 것과 함께 할 때에 반드시 짠 맛을 낸다. 어두움은 빛이 오면 자연히 물러가게 된다. 그렇듯이 소금은 짠 맛의 특성을 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이미 와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은 마치 가루 서 말에 누룩이 퍼진 것과 같다.
 
가루 서 말이 누룩 조금을 이길 수 없다. 하나님나라 사람들의 존재감 역시 그들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사과나무는 비옥한 땅에서도 사과나무이고 척박한 땅에서도 변치 않는다.
 
사과나무는 늘 있던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잎을 피운다. 꽃을 피워 존재를 나타내고 그리고 잎사귀가 나와 나무를 성장시킨다. 사과나무는 사과 꽃을 피우고 사과 열매를 맺으므로 사과나무로서의 존재를 나타내듯이 신자들은 빛으로 소금과 같은 역할로 존재하는 것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길거리에 버려지고 사람들의 발에 밟혀진다고 하였다. 신자로서 존재감이 없으면 세상으로부터도 무시를 당하는 것이다.
 
빛과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고 배워야 한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야 한다. 주님의 길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제자가 아니다. 또한 주님이 계신 자리에서는 죄와 거짓은 물러가게 하셨다. 저들의 전통이나 규례를 하나님나라의 복음으로 잘못됨을 지적하셨다.
 
빛과 소금은 홀로 있을 때에는 의미가 없다. 어두음이나 다른 존재들이 있을 때에 더 강렬하게 존재감을 나타낸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의 존재감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상에서는 아무런 존재감이 없다. 그런데 소금끼리 모이면 난리가 난다. 서로 소금이라고 칭찬하고 치켜세운다. 그리고 당신은 강렬한 빛이라 하고, 나도 빛이라 자화자찬이다.
 
신자가 신자를 만났을 때에 신자라는 것이 확인되는 믿음이 되었다. 아니다. 신자는 세상 사람들도 알아본다. 그런데 요즘의 신자들은 세상이 나를 신자라고 보는데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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