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목회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인격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만남이야 어떠하든 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른 믿음을 알도록 인도하는 일을 한다. 목사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그 가운데에 목사를 어떻게 대우 또는 대접을 하는가에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몸가짐과 제자로서의 태도를 당당히 분부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맞이하는 자들의 태도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셨다. 그러니 신자들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잘 살피고 따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목사를 위함이 아니라 신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세움을 받은 목사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상급이 결정지어 진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자를 영접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된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을 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한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입은 자들이다. 그러니 목사가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권위 말씀이요, 거룩하신 일에 동의하며 동참을 하는 믿음의 자세를 취하여야 한다. 그래야 선지자의 상이 임한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은 대로 행하는 자를 의인이라 한다. 다니엘과 같은 사람이다. 이런 신자에게는 의인의 상을 받게 된다고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냉수를 대접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냉수를 대접한 것이 된다고 하셨다.
 
그러니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판단하려 하지 말고 성경의 말씀으로 판단을 하여야 한다. 목사를 어떤 믿음의 자세로 대하는가에 따라서 상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목사를 편리함에 따라 사용하려 하고 이용하려 하면 안 된다. 즉 형식과 요식행위를 갖추기 위함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목사를 대하는 태도 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분량이 나타난다. 목사는 하나님과 신자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변호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편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목사의 됨됨이를 하나님의 편에서 판단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목사를 대접을 할 때에는 기쁜 마음으로 하면 된다. 그런데 신자들은 기쁜 마음으로보다는 무슨 목적이 있어야 만나려 한다. 자기의 욕심과 의도로 만나려 한다. 그러면 대접이 뇌물과 같게 된다. 뇌물은 대가를 바라고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목사는 신자들의 사사로운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대의를 갖고 활동하는 자들이다. 신자들을 거룩한 나라 안으로 들어오게 하며 기쁜 소식을 전하여야 한다. 이 일을 방해하며 자기가 원하는 대로 교회와 신자들을 움직이려 하면 그것은 음부의 권세가 된다.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면 사탄이 되는 것이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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