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어린 시절에 놀던 놀이 중에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라고 하며 모래에 손을 묻고 모래 위를 두드리는 적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정성과 치성을 드리면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일종의 종교심을 고취시키려 하였던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보상의 심리가 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의 심부름을 하면서 대가를 요구한다. 그것을 하면 무엇을 해 줄 건데 한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수고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마음을 알아 달라 한다.
 
그러다보니 믿음의 생활에서도 보상의 심리가 작용한다. 간절한 마음으로만 기도를 드려도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땀을 흘리면서 봉사의 일을 하면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실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 일꾼으로 선택을 받았다는 자체가 복이라는 것이다. 일꾼이 된다는 것은 주인에게 택함을 받았다. 일꾼으로 택함을 받는 일은 자기가 자기를 스스로 임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주인이 택하고 주인이 하고자 하는 일을 맡긴 것은 자격을 얻은 것이다.
 
추수하는 주인이 추수할 일꾼들을 보낸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떤 보상을 바라고 땅 끝까지 간 것이 아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 순교를 한다. 왜 그들이 믿음을 지키면서 순교를 할 수 있는가?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그 복음을 전하는 그 자체가 복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복음을 들고 선교지를 간다는 것은 일꾼으로서 보냄을 받은 것이 된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
 
그러니 전도자로 전도하는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인가를 알게 된다면, 믿음의 보상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하늘 아버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셨다. 그리고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소개하였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주신 영광을 제자들에게 주신다고 하셨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아버지의 이름을 세상에 알게 하는 일이다.
 
예수님이 하셨던 일을 우리에게 맡기시고 우리를 전도와 선교로 보내시는 것이다. 그러니 신자들이 전도를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영광스러운지 모른다. 하나님께 영광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믿음의 고백으로 세상에 증거하여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영화롭게 하는 것은 단순히 단어를 외고 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셨던 것처럼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을 하여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자는 십자가의 복음을 들고 죽음의 골짜기 아골 골짜기까지 갈 수 있는 것이다. 말씀에 순종을 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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