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신자라면 핍박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핍박이라는 상황을 너무 확대하려는 것 같다. 생각 속에 상황은 복음을 전하는 현장이어야 하고 정치적이나 종교적으로 억압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핍박이라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것 가운데도 있다.
 
예수를 믿는데 있어서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정치의 상황이나 국가의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 그리고 친구들이다. 대를 이어 믿던 종교를 버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핍박과 고난을 감수하여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고 십자가의 도를 따를 때에 핍박을 하였던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이 아닌 가족과 유대인들이었다. 가족에게 쫓겨난다는 것은 호적에 있는 기록을 지우므로 인하여 더 이상 가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유대사회에서는 출교를 당하였다. 즉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을 마비시키겠다는 의도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당하는 고통이 가족들의 반발이다. 또한 남편과 아내와의 갈등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성경말씀 속에 있는 답은 그래도 예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핍박을 선한 행실로 이기라 한다. 말로 구원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선한 행실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라는 것이다. 선한 행실 속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한 순종과 두려움을 나타내어야 한다.
 
신자는 착한 행실로 핍박을 주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고난과 핍박의 현장에서도 기도와 찬송을 하여야 한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바울이 찬송과 기도를 드리자 옥문이 터졌다. 이 상황에서 더 놀란 사람이 바울을 지키던 간수였다. 그는 자결하려 하였다. 오히려 바울이 그를 위로 하였다. 창과 채찍을 쥐고 있던 자가 부끄러움을 느꼈다.
 
간수는 놀랬고 당황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옥문이 터지면 죄수들은 간수를 헤치고 그 자리를 급히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였는데, 바울은 그렇지 않았다. 핍박과 고난 중에서 신자로서의 양심을 지킨 것이다. 옥문이 터졌지만 급히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 모습에 간수가 놀란 것이다.
 
바울의 선한 양심으로 보고 간수의 마음이 변하였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어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냐고 하자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하였다. 그 밤에 그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데려다가 맞은 자리를 씻어주고 그와 그의 가족이 다 세례를 받게 된다.
 
우리는 핍박이 오면 전투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성경의 말씀을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선한 행실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라고 한다. 신자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다. 그리고 종이 된다. 우리의 주인이 말씀하시고 계신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가 충성된 일꾼이다.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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