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 7:2)
비판의 무서움은 비판한 것에 대한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건든 비판하지 말라”(마 7:1)
왜 그런가하면 비판을 심판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비판하는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 눈속에 있는 들보를 빼내어야 한다.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 7:4)
비판하지 않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내 눈속의 들보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구원받은 자로서의 믿음으로 채워야 된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바리새인의 의와 하나님의 의를 비교하여 말씀하고 있다. 즉 바리새인의 의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여야 자신의 의가 드러나는 의이다.
자신의 의를 들보라 하는 것이다. 들보를 빼내지 않으면 외식하는 자가 된다. 왜 그런가하면 사람은 알고 있다고 해서 그대로 행할 수 있는 실력이 없다.
비판이 가지고 있는 특성은 말로만 하지 행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속담에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
달리 말하면 비판할 수 있는 지식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의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수반되지 않는다함을 말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선을 알고 있는데도 늘 악에게 지는 존재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 7:18)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라”(롬 8:2)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십자가를 통과한 것이다. 아버지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자리이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리스도의 마음은 아버지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사랑은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 13:4) 이웃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자처럼 생각하시고 행동하셔야 합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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