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시 70:5)


시편 70편은 다윗의 시이다. 본문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간구하고 있다. 그런데 이전과 다른 구절이 등장한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라고 한다.


여기서 다윗은 가난함을 물질의 부족함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은 거룩함이다. 즉 거룩한 자만이 하나님과 관계가 형성이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5),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신다고 한다.


그리고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영을 소생시키며 회개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킨다고 하셨다. 이와 같은 차원에서 다윗의 기도를 이해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통회하며 마음이 겸손한 자를 만나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세워주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이다.


왜 이렇게 하시는 것일까요? 구원과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의인이라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너희는 하늘 아버지의 자녀라고 한다.


아버지와 자녀라는 관계가 형성이 되면 비로소 간섭이 시작된다. 다리 밑에서 살던 아이를 데려다가 양자로 삼으면 그때부터 아버지의 간섭이 있다. 만일 다리 밑에 그대로 살면 간섭할 일이 전혀 없다. 이것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방식이다.


본문에서 다윗이 간구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가운데 “심령이 가나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함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심령이 가난해 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심령이 회개를 하고 가난해 진 사람들은 이미 천국의 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이 큰 복인 것을 말씀을 통하여 확인하였습니다.

거룩한 저 높은 곳에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곳에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다고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부족함이나 잘못을 이웃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자신의 부족함을 이웃에게 돌리는 것을 사이코패스(자신의 죄책감 결여)라고 하며, 자신의 잘못을 이웃에게 돌리는 것은 소시오패스(양심이 뻔뻔한 것)라고 합니다.

왜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까?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며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기도를 통하여 확인하는 것은 회개하는 심령이 있어야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이 되어서 그분의 간섭과 도우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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