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온전히 알리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하나님을 본다는 것과 음성을 듣는다는 것에 대한 정리이다. 하나님의 음성이나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이 주장을 하는 근거는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이 자신도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택하여 부르신 목적이 있다. 죄인 중에 괴수를 택하여 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즉 바울 같이 악한 사람도 구원을 받았는데 너희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면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됨이 있어야 한다. 즉 그분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이다. 거룩하신 그분을 만났으면 거룩한 품성이 나타나야 한다. 방언은 신령한 언어로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를 할 때에 사용이 된다. 그런데 만일 기도 후에도 성품적인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할 때에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먼저는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하는 것이고 다음은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에 감동이 생길 때이다. 


그렇다면 말씀에 감동되어 마음이 움직였다고 할 때는 해석이 가능하지만 직접 듣는다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가끔 거짓 교사들이 자신을 신령한 자로 속이기 위하여 언제든지 속임수로 쓰는 방법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증거는 하나님은 모세와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고 지금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주셨다. 제자들은 가르침을 받은 대로 교회에게 서신으로 말씀을 전하였다. 이 모든 일에 성령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성경으로 기록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말씀으로 만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믿고 신뢰하게 되면 그분을 만난 것처럼 확신을 갖게 됩니다.

사도 베드로가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서신을 보내면서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칭찬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적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하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을 대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혼이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9)

그러면 점점 얼굴을 마주 보는 것처럼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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