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본문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과 대화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바리새인을 비교하여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 당시 유대인 사회의 분위기는 바리새인은 민족주의자요, 율법을 전통적으로 지키는 유대인의 정신적인 지주이다. 유대인을 이끌고 있는 입장에서 구원을 위하여, 새로운 메시아의 출현을 기다리며, 준비시키는 일을 담당하였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이 땅에 와 계심에도 불구하고 모르고 있다. 저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과 천국을 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하셨다. 그것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다는 것인데 죄인들의 죄짐을 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을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에 죽으심은 기쁨으로 죽으시는 것이고 이것은 내 아버지에게 받으신 계명이라 하신다. 또한 죽으시면 생명의 부활을 다시 얻기 위함이라 한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요 10:17). 즉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증명된다는 것이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에게 죄사함을 주신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엡 2:1). 사망의 자리에서 구원하여 하나님 나라로 옮기셨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이 일을 하러 오신 것을 “나는 양의 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라 하며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을 삯군이라 하셨다. 그 이유는 경건을 자신들의 유익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으로 ‘고르반‘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막 7:11), 즉 성전에서 예물을 많이 드리면 부모를 봉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성전 헌금궤에 돈이 많이 들어오면 자신들의 배를 많이 불릴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죽지만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백성들의 돈을 빼앗는 자임을 밝힘으로 인하여 참된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선한 목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양들,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심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삯군 목사는 교인들에게 하나님 진리의 말씀을 전하여야 하는데 뇌물이나 받으며 진리의 말씀 전하는 일을 게을리 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교인들 가운데도 진리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의 유익을 얻으려 교회에 출석하면 심히 곤란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 안에 다툼이 일어납니다.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5). 교회는 사람의 전통을 따르는 곳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죽기까지 따르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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