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삼하 18:9)
삼하 18장은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이스라엘의 전투가 있다. 당연히 다윗의 군대가 승리를 하였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다윗은 전투에 나가는 신하들에게 당부를 한다. 만일 압살롬을 만나거든 나를 위하여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고 한다.
압살롬은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게 된다. 나귀를 타고 급히 피하다가 그만 머리가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려 매달리게 된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군사가 요압에게 알린다. 그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칼로 압살롬의 심장을 찌른다.
압살롬은 그가 자랑하던 것이 올무가 되어 죽음의 자리로 갔다.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삼하 14:26). 머리털이 많은 것과 빨리 자라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간교함과 행함에 힘이 뻗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분노를 힘으로 삼았고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즉 다말의 강간 사건을 자기가 왕의 자리에 오르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본문을 통하여 탐욕에는 경계선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압살롬이 하는 짓은 아버지를 죽이러 전쟁에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다. 결국은 하나님 진노의 심판을 받았다.
다윗은 압살롬의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한다. 이미 두 아들의 죽음에 이어 압살롬도 죽었기 때문이다. 그 아픔의 표현을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 18:33).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부성애를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인들이 죄로 인하여 죽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의지를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들이 잘못하였지만 부하들에게 나를 대하듯이 너그럽게 하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러하듯이 우리들이 죄를 범하거나 고통을 당하면 아버지는 더 괴로워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탕자의 깨달음입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눅 15:18)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지금도 하늘 아버지는 우리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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