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11)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고 찾는데 열릴 때까지 두드려야 한다. 이 말씀은 조바심을 내어 급하게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께서 주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배우고 닮아가는 가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는 이러한 성품을 가진 분이시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도다”(시 103:8)

그리고 자주 책망하지 않으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신다.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시 103:9)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닮은 자를 좋아하신다. 이와 같은 성품을 갖게 되면 이웃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아니한다.

그래서 바리새인의 의와 하나님의 의를 가진 사람의 차이는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즉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의를 자랑하며 비판을 하지만 하나님의 의를 가진 사람들은 겸손함으로 용서와 긍휼을 베푼는 차이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라는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이것을 모르고 자기의 구원을 자랑하는 자들은 개나 돼지 앞에서 자랑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즉 나는 아는데 너는 왜 모르느냐 함으로 자기의 잘남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주장을 함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을 얻은 자는 사랑과 희생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일이나 이웃과 대화에서 바리새인과는 분명히 달라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라는 존재가 여호와 앞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를 확인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서듯이 이웃 앞에 설 때에도 사랑하는 주님과 함께 서야 합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고 사랑하신 주님과 함께 이웃 앞에 설 때에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즉 이웃을 비판할 수 없으며 자신의 의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인격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주님도 언제나 나를 인격적으로 대하여 주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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