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마태복음 5장 6장 7장의 말씀을 산상수훈이라 한다. 즉 하나님 나라 사람이라면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으로 도덕 윤리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마 5장에서 나오는 팔복은 심령에 관한 것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그분의 성품을 닮게 되어 있다. 그 성품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신 것이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그분의 성품을 닮아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 치장이 되면 외식하는 자가 되어 상급을 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마 6장의 내용이다.

사랑과 선행을 하되 은밀히 하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하면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기 때문이다. 

이렇게 믿음 생활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 나를 구하라 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하나님 나라의 의를 알게 됨으로 인하여 때로는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 즉 나의 믿음은 너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믿음을 이웃과 비교하여 비판과 정죄한다. 그런데 진짜 믿음은 진리를 아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사랑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자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사랑이 없는 진리는 거짓이다. 아무리 진리를 잘 말하여도 울리는 꽝과리가 되는 것이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전 13: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진리로 다투고 비판하는 자보다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를 더 좋아하십니다.
왜 그런가 하면 하나님은 자신을 닮은 자를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고전 8:3)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인데 사랑이 없다면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