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삼상 26:10)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왔다. 사울과 함께 하는 군사 삼천 명은 늘 피곤하였다. 블레셋 군대가 쳐들어오면 전쟁을 치루어야 하고, 전쟁이 끝나면 다윗을 추적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피곤에 지친 사울 일행은 광야에 널브러져 잠을 자고 있다. 사울은 진영 가운데서 창은 머리 곁에 두고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다윗과 헷 사람 아히멜렉과 아비새가 다가간다.
그때에 “아비새가 다윗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꽃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하니”(삼상 26:8). 이번에는 아비새가 사울을 창으로 단 번에 찔러 죽이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삼상 26:9), 누구든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다윗은 모든 심판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있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 자신도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며 살아야 하고 아비새도 말씀에 순종하여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다윗은 이번에도 여호와께 판단과 심판을 하실 것을 믿고 있다.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삼상 26:10).
다윗에 말한 대로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삼상 31:6). 사울은 다윗에게 죽지 않았다. 다윗에 부하에게도 죽은 것이 아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악이 악인을 죽일 것이라”(시 34:21) 하였다. 결국에는 블레셋 군인의 활에 부상을 당하고 칼 위에 몸을 엎드리어 스스로 자결을 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한 번 더 확인하는 것이 있다. 모든 판단과 심판은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이다. 선과 악에 대한 판결은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자는 자신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정죄한다. 참 신자라면 죄악 가운데서 빛을 드러내는 것으로 증명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외식이라는 것은 속은 아닌데 겉으로 그러한 척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데 하나님의 사람인 척함을 말합니다.
참 신자는 겉과 속이 같습니다.
속도 진실하고 겉으로 정직하고 성실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척하는 사람은 이웃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것이 범죄인 줄을 모릅니다.
사울 왕이 두 번이나 다윗이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정죄와 심판은 하나님에게만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함부로 교회나 이웃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시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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