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그들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그들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시 35:24)
다윗은 사울의 추적을 피하여 피난길에 있다. 그와 일행이 엔게디 동굴 안에 숨어 있을 때에 마침 사울이 용변을 보러 굴 안으로 들어왔다.
다윗은 용변을 보고 있는 사울이 무방비 상태이어서 칼로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다윗의 사람들이 이르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하니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삼상 24:4)
그와 함께 하는 일행들이 하는 말이다. 오늘 하나님께서 사울을 다윗에게 넘긴 날이다 하며 사울을 죽일 것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 않고 그의 겉옷만 벤다. 다윗이 이렇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사울은 하나님께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이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목적하심이 있기에 사울을 쓰신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모든 심판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있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하는 육백 명은 사울에게 원한이 있다. 사울에게 포도원을 빼앗기고, 과다한 세금 징수로 인하여 빚진 자가 되었고,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하여 미움을 받는 자들이다.
그들이 다윗과 함께 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악한 왕인 사울을 물러나게 하고 다윗의 정권을 세워 공의로운 나라를 만드는데 있다. 그러므로 이제 다윗이 사울 왕을 죽이기만 하면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다. 또한 그들의 묵은 감정과 아픔을 해결 받을 수 있다.
이제 다윗은 더 깊은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 사울로부터는 생명을 지켜야 하고, 함께 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원망의 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아픈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호소를 하고 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 되셔서 판단을 하여 달라는 것이다.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공의로 판단을 하시며 나의 송사를 맡아 달라는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는 자로서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니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 그의 믿음은 사울을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음을 믿고 있다.
우리가 이웃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없는 근거는 오직 하나님만이 법을 만드실 수 있고 재판을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약 4:1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우리가 이웃을 판단하고 정죄하면 하나님과 같이 되려하는 교만의 죄를 범하게 됩니다.
율법을 만드시고 공의로운 심판을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나의 억울함을 하나님 앞에서 송사하셔서 공의로 심판해 달라는 간구 이외에는 우리에게 권한이 없습니다.
오늘 다윗의 깊은 고민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와 함께 하는 무리들의 억울함을 풀어 주어야 하는데 그 억울함을 해결할 때에도 하나님의 공의에 맡기는 것입니다.
이 무리들은 다윗이 결정한 것에 불만을 있어서 돌로 치자고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다윗의 일만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흔히 있는 일인데 그것은 우리들의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믿음이 성숙한 교회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공의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 편, 네 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공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웃이 내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서운해 합니다.
오늘 다윗의 기도가 우리들의 기도가 되어서 주의 의를 찬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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