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내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내 갑절이나 갚겠나이다”(눅 19:8)
본문의 말씀에도 구원이 임하는 것과 구원받은 후의 현상을 드러내고 있다.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인 삭개오의 집으로 들어간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죄인에게 임함을 눈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은혜의 말씀을 받은 자는 새롭게 창조된 자가 되어 하나님 율법의 순종하는 자로 변한다.
그래서 삭개오는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소외된 자들에게 자기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의 것을 빼앗았으면 네 갑절로 갚겠다고 한다.
이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막 19:9). 삭개오는 육체적으로는 아브라람의 후손인 유대인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의 아들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육적인 아들 이스마엘이 있고, 영적인 아들이 이삭이 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할 때에는 영적인 이삭이다. 그러므로 삭개오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 함은 영적인 자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원의 은혜가 임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이라 함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을 말한다. 그분의 음성을 듣고 따라 가는 제자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았다면 삭개오와 같은 현상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은 즉각적인 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즉시와 곧 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을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이 구원을 받아 모이는 곳입니다.
왜 모이게 하였는가 하면 그분의 가르침과 본을 따르기 위함입니다.
즉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구원받은 이후의 사람들이 대부분임을 아셔야 합니다.
아직도 죄인이었을 때의 구원의 은혜를 기다리고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사도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1-2)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더 심하게 질책을 합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여 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6).
어리석은 자들이 행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것이라 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런데 구원은 은혜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도 그와 같은 행위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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