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하면 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

만일 위증하는 자가 있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였다고 하면 그 논쟁하는 쌍방이 같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 당시의 제사장과 재판장 앞에 설 것이요”(19:16-17)

두 사람이 언쟁을 하는 것은 대화 속에 거짓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짓에 대한 결과의 무서움을 모르면 큰 일이 생긴다.

자신의 생각으로 거짓이 섞인 소설을 쓰는 것이 범죄인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저들의 주장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였을 뿐이라 한다. 그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고 오히려 반문을 한다.

내가 내 입을 가지고 말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죄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러하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것에 대한 교훈을 준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유익을 챙기기 위한 수단이다. 이웃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보상하려는 마음이 없을 때와 의도적으로 비방을 하여 곤경에 빠트리게 한다.

만일 이러한 일이 발생을 하면 제사장이나 재판장 앞에 서라 한다. 그러면 재판장은 자세히 조사하여 그 증인이 거짓 증거하여 그 형제를 거짓으로 모함한 것이 판명되면 그가 그의 형제에게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19:18-19) 하셨다.

거짓 증거를 한 사람에게 그가 꾀한 대로 벌을 가하라 하신다. 신자들 가운데에서도 이웃에 대하여 거짓으로 소설을 쓴다. 그런데 그것이 죄가 된다는 것을 모른다.

그것에 얼마나 무서운지를 성경이 증거하고 있다.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19:21) 

이 말씀은 이웃에게 피해를 입혔을 때에 그대로 갚아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렇지 않고 판결을 할 때에 이렇게 하라는 것이다. 즉 판결을 정의롭게 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거짓으로 이웃을 괴롭히려 했던 만큼으로 판결을 하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거짓말과 헛소문을 퍼트리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아셔야 합니다.

이웃을 곤경에 빠트리려 했다가 결국에는 자기가 어려움을 겪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은 공동체를 세우려 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진실과 심판이 있습니다.

이웃을 잘못 비판하면 그 비판에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7:2)

이웃을 땅속에 넣기 위하여 구덩이를 파면, 결국에는 자신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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