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에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에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욘 1:2)
성경을 스토리로 이해를 하게 되면 본래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지 못할 때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요나서이다. 성경 말씀은 하나님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 결코 사람이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선지자 요나 그러면 불순종의 아이콘이라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왜 요나를 일꾼으로 쓰셨는가로 생각하여야 한다.
요나 선지자가 쓰임을 받을 때의 북이스라엘은 가장 번성하였고, 우상숭배와 도덕적으로 가장 타락한 때였다. 여로보암 2세 왕은 여로보암의 죄를 이어갔다.
두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예루살렘이 아닌 벧엘과 단에서 제사를 드렸고, 레위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으며, 초막절(장막절)을 자기의 생각대로 정하여 7월 15일을 8월 15일로 지켰다. 즉,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을 따랐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에게 죄의 심판을 보여주기 위하여 니느웨로 요나를 보내고 있다. 요나의 진노의 심판을 외침으로 인하여 니느웨 사람들은 굵은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회개를 한다. 그러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의 계획을 돌리신다.
니느웨의 심판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악에 대한 경고이며 결국에는 이스라엘이 멸망을 할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인자와 사랑을 베풀어 주신다. 그것은 회개하지 않는 백성에게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방식을 택하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데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실 만큼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요나는 우리들의 모습이요, 나의 모습입니다.
지금도 나의 죄를 위하여 하늘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서 죄사함을 위하여 일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오늘 설교를 통하여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막대기 같은 나를 성찰하는 시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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