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사람에게는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 그래서 늘 아쉬워한다. 무엇이 있었으면, 그것만 있으면 하면서 산다. 목회자나 교인들에게도 바람이 있다. 좋은 예배당에 편리한 시설의 건물을 소유하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털을 삐죽거리게 하는 음향에 맞추어서 찬양도 하고, 편안한 의자와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곳에서 좋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한다.
지상에는 유형교회가 많이 있다. 그 가운데는 건물을 소유한 교회도 있고 세를 얻어서 있는 교회도 있다. 좋은 건물을 가지고 있어서 매달 갚아야 하는 이자를 걱정하는 교회나, 자기 건물을 가지지 못한 교회나, 교회 건물에 대한 걱정은 동일하다. 있어서 걱정을 하고, 없어서 걱정을 하는 차이이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 생각하는 것이 교회는 건물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큰 교회 건물을 소유하면 많은 사람이 모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 큰 건물을 소유하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은행 빚을 끌어다가 건축을 한다. 건물은 지었는데 그 때부터 얼굴에 주름이 잡히도록 인상을 쓰며 기도를 한다. 건축 빚을 해결해 달라는 기도이다. 재정이 점점 더 악화가 되자 교육비, 선교비, 구제비, 모든 것을 동결 시킨다.
교회 건축을 무리하게 하여 파산선고를 하는 교회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지나친 욕심과 하나님의 뜻을 잘못 이해함으로 인한 결과이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성전만 잘 짓고, 성전에서 제물을 드리며 제사만 잘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심으로 예루살렘 성과 유다의 모든 성읍이 안전하게 보호를 받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이것이 그 당시의 지도자들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너희들이 성전만 잘 짓고, 제사만 드린다고 너희에게 축복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성전 문에서 외치게 하였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이웃에게 정의를 행하고 가난한 고아나 힘없는 과부나 이방인을 압제하지 않고, 무죄한 자에게 피를 흘리게 하지 말며,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하심을 기억하며 살라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이러한 외침에도 제사장과 선지자들과 고관들은 성전만을 지키면 된다고 고집을 하였다.
하나님의 생각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생각이 달랐던 것이다.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기 위하여 하나님은 수 없이 선지자들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고집을 숙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패망의 길을 간 것이다.
오늘날에도 교회건물이 있으면 모든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교회건물과 재산으로 인하여 싸우는 교회가 너무나 많이 있다. 또 교회건축을 하고 걱정을 하며 시름시름하는 교회가 너무 많다. 이것이 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집하였던 모습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알고 따르는 길만이 교회가 살길이다. 교회 안은 장사하는 곳도 아니고, 친목회 모임을 하는 곳도 아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말씀을 듣고 실천하며 뜻을 세우는 곳이다.
교회가 잘되기 위해서는 먼저 이웃사이에 정의가 먼저 세워져야 한다. 사랑과 용서라는 명목 하에 모든 일에 질서가 없어서는 안 된다. 이웃 사이에 지켜야 할 것은 지키라는 것이다. 일부의 몰상식한 교인들이 이웃남자의 아내에게 '자기'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힘없이 외롭고 혼자 사는 여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도와주는데 오해를 받지 않게 하여야 한다. 혼자 산다고 만만히 보고 아무 때나 전화를 한다든지 성적희롱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베푸는 사랑과 긍휼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셨는데, 구원의 대가를 요구하지 않으신 것 같이, 우리도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행하면 날마다 교인 수를 더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다. 구원받은 자는 예수님의 핏 값을 치루고 얻은 자이다. 이렇게 귀한 자를 싸우는 교회에 보내어 실족시키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이다. 그 귀한 자를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넘치는 교회에 보내시겠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 어린 자와 과부를 함부로 대하는 자들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무례한 행동이다. 어린아이와 과부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구원한 자들이다. 그들을 무시하는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고 윽박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는 내가 만만히 보고 상대할 자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핏 값을 치루고 택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을 자기의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고 생각을 하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된다.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의 길을 가야 한다. 그러기에 같은 목적과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뒤쳐진 자를 격려하며 함께 가야 하는데, 자기의 목적을 위하여 곁길로 빠지게 하고 늘 교묘한 말로 속삭이는 광명한 천사와 같은 사단이 있다는 것이다.
참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좋아하고 기뻐하는 교회는 건물을 자랑하는 교회가 아니라, 이웃에게 정의를 행하며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자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내가 이 성전을 실로 같이 되게 하고 이 성을 세계 모든 민족의 저줏거리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렘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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