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미국사회의 이데올로기는 긍정주의 사고방식이라고 한다. 이 긍정주의 사고방식이 경제대란으로 가는데 큰 몫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낙관이 소비의 심리를 부추기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이 실제로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그런데 긍정의 힘이라고 하는 책이 기독교 서적으로 베스트셀러가 되고 교회에 추천도서로서 많은 신자들에게 읽게 하였다. 미래가 좋아 질 것이라는 생각은 두려움과 염려로 고민하고 있는 내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는 것이다. 낙심으로 인하여 처진 마음을 세우는데 일시적인 방편으로 사용을 한다. 그런데 모든 일을 관찰과 정확한 분석 없이 수고를 하지도 않으면서 잘 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설교의 예화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대적인 배경이 있다. 물질의 성공을 위한 인물이라면 산업혁명 이후의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하여 철저하게 산사람들은 종교개혁시대의 사람이나 청교도 시대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인물의 시대적인 배경을 보면 설교자가 무엇을 강조하려 하는지를 알 수 있다.

긍정주의 사고는 후기 자본주의와 함께 하면서 번창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신복음주의 운동이 한몫을 했다는 주장이 있다. 모든 문제를 낙관적으로 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염려가 있냐는 것이다. 빌립보서에 있는 말씀을 증거로 댄다. 그렇다면 그 말씀을 한 사도바울은 그의 삶을 모두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생각을 했냐는 것이다.

사도바울의 삶은 하나님께서 능력을 나타내시기 위하여 누구보다도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고찰하고 더 깊은 자리로 나가려 애를 썼다. 성경의 서신서는 환난과 고통에서 몸부림치는 성도들을 위한 위로의 말씀이다. 그런 반면에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제자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이적과 기적을 행하신 것을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이 이 땅에 이미 와 있지만, 아직은 완성이 안 된 상태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에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진다. 그 기간을 기다리며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지금의 신자들이다. 그 기다림이 쉽지 않은 환난과 고통 가운데 있다는 것이 서신서의 증거이다.

긍정의 힘으로 살았던 사람들이 경제대란으로 힘들어 하고, 긍정의 힘으로 또는 하면 된다고 외치던 교회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제는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진지한 생각이 있어야 한다.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회 구조로 인하여 사람들을 빚으로 살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크레딧 카드로 비싼 옷도 사고, 론을 얻어 집도 샀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빚으로 교회 건물을 짓기 시작하였었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몰게지 사건으로 인하여 경제대란이 일어났었다. 그러자 교회도 힘들어 하고 있다. 심지어 교회 건물이 경매로 넘어가기에 이르렀다.

교회는 세상의 구조에 편승하는 곳이 아니다. 세상과 역행을 하는 곳이다. 세상이 어려워해도 교회는 안전한 곳이다. 반석 위에 세워진 곳이다. 세상이 흔들려도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다. 무엇에 흔들리지 않는지, 무엇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말씀 앞에서 생각하여 보아야 한다. 세상이 말하는 긍정의 힘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고, 하나님이 교훈하시는 말씀의 내용이 아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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