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믿음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과 대화를 하다가 보면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을 하는데 그들이 정한 방법으로 믿는다는 그들만의 고집이다. 어떻게 하든 하나님만 믿으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더 황당한 주장은 주일날에도 집에서 TV로, 수요예배는 성경말씀을 묵상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새벽예배는 처음 시작한 사람을 원망하는 자리에 까지 나간다. 물론 복음을 변질된 내용으로 전한 목회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여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였다. 이것을 단순하게 생각을 할 수 있겠으나, 특별한 이유는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성과 유다의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할 때에,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두 광주리를 보여 주셨다.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다른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자들을 극히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고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잘 돌보아 다시 돌아오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으로 피신한 자들을 나빠서 먹을 수 없는 이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릴 것이라고 하셨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당연히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것이 좋은 것이라 생각을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인간의 생각과는 반대로 바벨론으로 잡혀가는 것이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이다. 이미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다. 그곳에 피할 길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심판과 멸망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피할 길을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생각과는 반대였다. 하나님은 지금도 주관자로서 이 땅에 사랑을 베푸시고 공의와 정의를 시행하고 계시다.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일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전달이 되고 있다.
교회는 이 일을 감당하기 위하여 설교와 성경공부를 전하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일에 대하여 세상 일이 바빠서 참여할 수 없다고 한다. 즉 피할 길을 외면하겠다는 것과 같다. 어두움의 세계에서 빛을 외면하고 내가 알아서 갈 길을 가겠다는 고집과 같은 것이다.
교회는 항상 사단과 거짓 교사들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한 동안 무교회 주의자들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을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알 수 있다고 하였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이 저들과 함께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충만하심을 교회를 통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교회에 출석함은 물론이고 말씀과 성경공부에 열심을 다하여야 한다. 알면서 참석을 않는 자들도 있고, 여러 가지의 핑계가 있다. 교회가 집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라 한다. 과거에는 교회에 가까운 거리에 있는 집들이 비싼 적이 있었다.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이라는 표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을 올바로 시행을 하려면 먼저 교회 가까이로 이사를 오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과 말씀을 청종하는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 속에 피할 길을 주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렘 24:5)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