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내가 살고 있는 아이다호의 날씨는 화창하고 일조량이 많아서 과실나무들이 열매 맺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다. 그래서 이곳에서 생산되는 과일들은 당도가 높아서 맛있다. 요즘은 푸르른 나뭇잎 뒤로 빨간 색의 체리들이 동그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체리 과수원에서는 좋은 상품은 수확을 한 후에 일반인들에게 체리 픽킹을 하게 한다. 마음껏 먹을 수 있으며 플라스틱 봉지에 담아 오는 것만 값을 지불하면 된다.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열매라는 단어가 익숙하다. 열매를 통하여 무슨 나무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하였고, 포도열매를 통하여 예수님과 연합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인이라면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소원한다.

과실나무들의 열매는 가지에 붙어 있다. 그래서 열매를 보고 나무를 쉽게 구별할 수가 있다. 그런데 성령의 열매는 사람의 밖에 열리는 것이 아니라, 안에 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외모를 보고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아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그 사람 안에 있는 것이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사랑이 없어'라고 말을 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그 말을 한 사람이 사랑이 없다는 증거이다. 사랑은 사람에게 달려있는 것을 따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 달려 있어서 내가 내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주는 것이라고 한다.

참된 사랑은 내 안에 있는 것을 내어 버리듯이 버리는 것이라 한다. 그런데 사랑을 움켜잡으면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내가 맺어야 하고 이웃을 위하여 주는 것이라야 한다. 내가 맺어야 하고, 내가 맛을 보아야 참맛을 알 수 있다.

과일도 종류에 따라서 맛이 다르다. 사랑도 그 맛에 차이가 있다. 이웃이 주는 사랑의 열매의 맛과 내가 맺어서 맛보고 이웃에게 주는 사랑에는 분명한 맛의 차이가 있다. 이것을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령의 열매를 맺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맺은 사랑의 열매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다른 사람들은 사랑의 열매를 맺어서 그 맛에 감격해서 기쁨과 즐거움을 전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의 간증을 들으러 쫓아다니는 모습이다.

과실나무가 시절을 따라 열매를 맺듯이 우리들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존적일 때에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오고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를 위한 것이다. 믿음의 생활을 하여도 열매가 없으면 헛된 것이 되고, 나무의 열매를 통하여 내가 어떤 나무인지를 나타내게 된다. 성령의 사람이라면 성령의 열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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