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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6-17)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6-17)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불의 심판을 면했기 때문이다. 죄로 인하여 부패된 육체는 쇠퇴해지고 부패가 되기에 사망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는 보편적인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둘째 사망이 있다. 죽었던 자가 심판의 부활로 나와 불못으로 가는 것을 둘째 사망이라 하는 것이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계 20:14) 이렇게 무서운 죄의 심판의 자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피하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구원의 완성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너희가 나와 맺은 언약을 지켜 행하면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아들이라는 것이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계 21:3)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는 마침내 구원이 완성되는 날이다. 그러니 그날에 얼마나 좋은가를 생각하면 기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날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버지의 뜻하심으로 이루어짐으로 내 뜻을 아버지의 뜻에 맞추기 위하여 쉬지 말로 기도를 하여야 한다. 그때를 기다리는 동안 많은 고난과 악과 싸워야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승리를 한다는 것이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하면서 항상 선을 따르라 한다. 항상 선을 따른다 함은 오직 선하신 하나님의 말씀만 따르는 것을 말한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서로 개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따르라”(살전 5: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이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짜들은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기뻐할 ...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10) 개혁주의 성령론, 즉 칼빈의 성령론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증거하고 있다. 이단들의 가르침은 성령이 임하는 것을 힘이나 현상이라고 한다. 성령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증거한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요 16:14)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 십자가의 도를 통하여 아버지를 만족하게 하셨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은혜는 아버지의 영광과 능력이시다. 이것을 보혜사 성령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전해 주신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성령 하나님이 이 영광을 가지시고 우리들의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그분은 우리들을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런데 가짜들은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걸을 수 있고, 이적을 행할 수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도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마 7:22)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하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다.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3) 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을 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이미 천국 아버지의 집에 올라가셨다. 그러므로 천국을 가는 길을 보여 주시고 가르쳐 주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에 하려 함이라”(살전 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이 부족한 것을 보충하에 하려 함이라”(살전 3:10)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을 하였다. 빌립보서 피신하여 간 곳이 데살로니가이다. 그곳에 세 주 동안 말씀을 전하였다.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행 17:2) 그 교회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 1:3) 아주 모범적인 교회여서 바울이 자랑을 하고 이웃 지역에 소개가 되었다. 그런데 그 교회의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데 오시지는 않고 신자들이 죽는 것을 보고 의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이 임하면 먼저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난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그 후에 살아 남은 자들이 예수님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휴거(들어 올림을)를 당한다고 한다. 이것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소망하는 자들의 간절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 땅은 노아의 때와 같이 결혼하고 장가가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으므로 재림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그러나 천국 소망을 가진 자들은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오면 그리스도인들은 일어나 주님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데 그 날과 시기에 대하여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에게 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살전 5:1) 그러니 그날과 그때는 아버지에게 있으니 깨어 정신을 차리라 한다. 늘 깨어 있으라 함은 그리스도와 연합의 은혜를 붙잡고 있으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만 있으면 재림의 날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 하나님의 구원의 영광은 주님의 재림의 날과 부활에 맞추어져 있다. 그런데 그 날과 그때는 아버지 외에는 아는 자가 없다. “그러나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그렇다면 믿는 자들은 그 날을 기다려야 한다. 종말에 나타나는 현상은 땅 끝까지 천국 복음이 전해져야 하고, 하나님을 배교하는 자들이 있고, 거짓 교사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려 할 때라는 것이다. 깨어 기다린다고 함을 노아의 때를 상기시킨다.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홍수의 심판이 있을 거라고 알렸지만 사람들은 준비하지 않았었다. 시집가고 장가가며 일상을 즐기다가 멸망을 하였다.  또 롯의 때가 있었다. 소돔과 고모라 땅에 살면서 구원을 받아도 롯의 아내는 그만 뒤를 돌아보다가 멸망을 받고 마는 것이다. 이것을 교훈으로 말씀하시면서 데려가심과 버려 주심으로 말씀하신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마 24:40) 그러면 어떻게 그 날을 예비하는가? 말씀으로 깨어 있어야 하며,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한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 5:10) 어떻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인가? 구원의 내용으로 나를 단속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낮에 속하셨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의 말씀은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거울과 같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이는 그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 심판 때에 심판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심판이 있고, 두 번째는 믿는 자의 영화로움이 있다. 믿지 않는 자의 심판이 있으므로 악인의 심판의 약속이 이루어짐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를 찬양한다. 구원을 받은 자들은 재림의 날에 썩은 것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입게 된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53) 그리고 영광의 보응의 심판을 받게 된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롬 14:11) 그래서 자기의 입으로 자기의 일을 고백한다.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 14:12) 또한 주님의 재림의 날 이전에 죽는 자들이 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자들은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반면에 구원을 받은 자의 죽음은 죄와 사망과 고통에서 해방으로 영광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의 날에 썩지 아니할 것으로 입고 영원토록 살게 된다. 이것이 본문에서 말하는 가장 큰 심판의 날에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면 믿는 자로서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백을 하여야 하고 보응의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하여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의 뜻을 전하시고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는 본을 보이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따르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생을 받은 자들은 부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신자들에게 나타날 아주 중요한 믿음의...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 모인 공동체가 교회이다. 그곳에서 믿음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어리석은 자가 된다. 즉 믿음은 비교를 하거나 잘난 체를 하거나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음은 믿음의 분량대로만 사용하면 됨을 말한다. 그 당시에는 시장에 파는 고기들은 로마의 황제에게 드렸던 제물이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도 있었고 먹지 않는 자들도 있었다.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우상의 제물이라 생각을 하였고 믿음이 강한 자들은 하나님 이외에는 참 신이 없으므로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먹는 자를 비판하지 말고 안 먹는 자를 믿음이 작은 자라고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비판하지 말라는 것에 대하여 비유로 말한다. 각 사람에게는 주인이 있다는 것이다. 즉 남의 종에 대하여 비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주인만이 판단할 수 있다. “남의 하인을 비판하는 너는 누구냐 그가 서 있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자기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라”(롬 14:4) 그리고 몸의 지체로서 비유로 말한다. 몸의 각 지체는 서로 간에 경쟁을 하지 않는다. 오직 머리의 명령을 따를 뿐이다.  그래서 명령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살아도 죽어도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산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만일 형제를 비판하거나 정죄를 하게 되면 마지막 날에 보응의 심판을 받게 된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롬 14: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각 사람마다 각각 다른 분량을 갖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장성한 분량을 어떤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갖습니다. 그러면 비...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왕상 12: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 이는 온 이스라엘이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여 세겜에 이르렀음이더라”(왕상 12:1)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하여 분열이 일어나 혼란 가운데 빠진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것인데 여로보암을 통하여 나타내시는 것이다. 선지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을 만나서 열 지파를 줄 것을 말한다.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는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왕상 11:31) 열 지파를 주는 이유를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한다.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내 법도와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함이라”(왕상 11:33) 그러시면서 다윗과 같이 내가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면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함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다. 견고한 집은 세우지만 영원하지는 않고 다윗의 집을 괴롭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한지라”(왕상 11:39) 그렇게 하여 북이스라엘이 시작이 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타락한 북이스라엘을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왜 그런가 하면 메시야는 유다 지파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지파가 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유다는 이스라엘보다 더 많은 악행을 행하였다. 이것이 죄의 본성이다. 죄를 보면서도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면서도 우상숭배를 하며 율례와 법도를 지키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새 약속을 하시면서 부패한 더러운 본성을 고쳐주시겠다는 것이다. 새 언약으로 구원을 받은 백성들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 예수님이 안에 계시어 구원받은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만 사랑하고 죽기까지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