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어제 밤부터 바람이 몹시 세차게 불고 있다. 새벽 예배를 나가기 위하여 문을 나서니 쓰레기통이 뒤구르고 있고 뒤뜰 대문도 열려져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불고 있다. 나뭇가지들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는데, 그 흔들림이 마치 바람에게 모든 것을 내어준 것 같은 모습이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을 수는 있는데,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적을 보고 하늘에서 오신 선생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자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와 하나님 나라를 들어 갈 수 있는 방법을 여쭈어 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야 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니고데모는 다 큰 사람이 어떻게 다시 엄마의 배속으로 들어 갈 수 있냐고 반문을 하고 있다. 다시 예수님이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시면서 사람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거듭나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신다. 성령께서 일을 하시는데 바람처럼 어디에서 오고 어디로 가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나간 소리는 있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오고 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즉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의 역사가 있는데, 전적으로 성령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이다.

행위로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간다는 중생의 교리를 말씀하신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택함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이 은혜를 너희에게 주기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야 한다. 이 말씀을 광야에서 불뱀에게 죽게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대 끝에 달린 놋뱀을 보고 구원을 얻은 것처럼, 인자가 나무 위에 달려야 한다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의 은혜가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임한다는 것이다. 그 은혜가 임하는 것이 사람이 볼 수도 없고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성령을 바람으로 비유하고 이 땅에 많은 신자들이 성령의 바람이 자기에게 불어 주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아직도 창 밖에는 바람이 불고 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려 본다. 성령의 바람이 아이다호 한인 장로교회에 불기를 진심으로 원한다. 그 크신 은혜가 우리에게 임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도 넓어지고 깊어지면 좋겠다. 그리고 상처받은 심령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으면 좋겠다.

만일 성령의 바람이 저렇게 분다면 너무나 좋을 것이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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