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25의 게시물 표시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대하 2:6)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대하 2:6) 솔로몬은 하나님께 받은 지혜를 가지고 성전 건축을 준비한다. 성전을 건축하면서 신학적인 신앙고백을 한다. 먼저 왕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있다.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시다고 한다. “내가 건축하고자 하는 성전은 크니 우리 하나님은 모든 신들보다 크심이라”(대하 2:5) 그래서 이 성전은 하나님을 가두는 곳이 아니라 그의 앞에서 제사와 분향을 하기 위하여 짓는 것이다. “누가 능히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내가 누구이기에 어찌 능히 그를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요 그 앞에 분향하려 할 따름이니이다”(대하 2:6) 왕은 아버지 다윗이 친하게 지냈던 두로 왕 후람에게 사절을 보내 성전을 지을 기술자를 요청한다. 그러자 후람은 천지를 지으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송축을 받으실지로가 하며 찬양을 한다.  왕의 신앙 고백에는 하나님의 편재성을 증거한다. 모든 곳에 계시는 하나님을 성전 안으로 모실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무한성을 말한다. 그래서 성전은 죄인 된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수단인 예배와 분향에 있음을 정확하게 하였다. 오늘날 큰 교회당을 짓고 하나님이 이곳에 거하신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리고 솔로몬 성전은 이방 사람의 기술자와 역군 15만명이 함께 하였다. 즉 예루살렘 성전은 유대인들의 힘으로만 지어지지 않았다. 이는 장차 그리스도로 지어지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나가 되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8)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요하게 여겼다. 여기에 스데반이 솔로몬의 신앙고백을 갖고 저...

“솔로몬이 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 하나님의 회막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지은 것이 거기에 있음이라”(대하 1:3)

  “솔로몬이 온 회중과 함께 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 하나님의 회막 곧 여호와의 종 모세가 지은 것이 거기에 있음이라”(대하 1:3) 솔로몬 통치의 영적 기초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하였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왕위가 견고하여 가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사 심히 창대하게 하시니라”(대하 1:1) 왕은 백성들을 이끌고 기브온 산당으로 간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궤는 예루살렘에 있지만, 여호와의 회막과 번제단은 여전히 기브온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놋 재단 위에 천 마리의 희생제물을 드려 예배하였다. “여호와 앞 곧 회막 앞에 있는 놋 제단에 솔로몬이 이르러 그 위에 천 마리 희생으로 번제를 드렸더라”(대하 1:6) 그 밤에 하나님이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주기를 원하냐고 묻는다. 왕의 대답은 주의 백성을 재판할 지혜와 지식을 구한다.  그러자 하나님은 왕의 마음을 기쁘게 여기사 지혜와 지식뿐만 아니라 부와 재물과 영광도 보너스로 주신다.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대하 1:12) 또한 왕은 병거와 마병을 모으고 은금을 돌같이 흔하게 할 정도로 나라가 부강하여진다. 그러나 이것은 훗날 타락의 불씨가 된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솔로몬이 부강해 진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탁월함보다 하나님의 임재가 더 중요함을 말한다. 일천 번제를 일천 번 제사를 드렸다고 생각하면 오해이다. 잘못된 해석에서 천 일 동안 제단을 쌓으니 왕의 정성을 보고 복을 주셨다라고 하는 것이다. 즉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공로 사상이 아니다. 왕은 자신이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임을 알았다. 그래서 주의 백성을 하나님의 뜻으로 다스리기를 원했다.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한 기도를 하였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루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베드로와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낸다. 이 사건을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생명의 말씀은 가둘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대주제이신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통치하고 계심으로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 세상의 권위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 있음을 알고 있을 때에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권위로 죽은 자를 살리시는 방법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이루시는 것이다. 이 일을 이루시는데 세상의 박해 속에서 진행하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이 세상을 이기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조롱하며 십자가에 못 박고, 교회를 탄압하며 핍박하였다. 그래도 교회는 쓰러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생이 있고, 생명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사도들을 쓰신다.  즉 모든 핍박이 와도 이기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 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10) 그래서 사도들이 전하는 증거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고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증거를 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더 나아가 사도는 자기의 고난이 영광이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세상을 이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자신에게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엡 3:13) 그러면서 너희들도 이기고 남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전한다. 이것을 깨달아야 복음의 능력을 인정하고 증거하는 자가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들이 감옥에 갇히고 주의 사자가 끌어...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행 5:19-20)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행 5:19-20) 예루살렘 초대교회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이후에 폭발적인 부흥을 하였다.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의 시기심에 의하여 제자들이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사두개인들의 시기는 신학적으로 부활을 믿지 않았고, 자신들의 정치적인 기반이 흔들릴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옥에 갇힌 사도들에게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고, 성문에 가서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한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행 5:19-20) 그리하여 그들은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쳤다. 대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은 공회와 원로들을 다 모으고 옥에 있는 사도들을 잡아오라 한다. 옥문에 도착하여 보니 옥은 든든히 잠기고 지키는 자들이 있는데,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었다. “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행 5:23) 그런데 사람들이 와서 알리기를 옥에 가두었던 자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성전 맡은 자와 부하들이 가서 사도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운다. 그리고 말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지 말라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듣지 아니하느냐고 한다.  그때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기를 사람의 말을 듣는 것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행 5:29) 여기서 생각하여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가 있다.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죽은 것이고, 사도들은 하나님께서 그를 임금과 구주로 높이셨다고 하는 것이다. 사도들이 전하는 말씀의 내용은 하나님이 그를 높이신 것은 회개와 ...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야고보 사도는 화평을 심으라고 권면했지만 여전히 교회와 성도 안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약 4:1) 그래서 다툼의 근본 원인을 진단하고 철저한 회개와 겸손을 촉구한다. 원인으로는 내면의 정욕 때문이며 세상과 벗 된 영적 간음이다. 공동체 내부에서 싸움이 나는 것은 상대방의 잘못이 아니라 내 지체 중에서 싸우려 하는 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함으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약 4:2) 욕심을 내어 얻지 못하면 살인과 시기가 더욱 심해진다는 것이다. 왜 얻지 못할까?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쓰려고 구하기 때문이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3) 여호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세상과 벗을 하면 원수가 되는 배신의 행위가 된다. 이것은 스스로 원수가 되는 행위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는 능력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아야 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사도는 영적 회복을 위하여 성도들에게 명령한다. ‘하나님께 복종하라, 마귀를 대적하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손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두 마음을 품지 말라’, 자신의 죄에 대해 슬퍼하며 애통하라, 진정한 회개‘, ’주 앞에서 낮추라’ 즉 성도들의 믿음의 상태를 진단하고 처방을 한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지 말라,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 자신의 죄를 슬퍼하고 회개하...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라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애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니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대상 29:1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니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대상 29:17)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한 자원하는 헌신과 감사의 기도를 하고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눈을 감는다. 이 장면은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주께 바친다는 청지기 정신의 믿음 고백이다. 왕은 백성들에게 외친다.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다윗은 자신이 성전을 얼마나 사모하였는지를 보여준다. 개인 소유의 금 3,000달란트와 은 7,000달란트를 드렸음을 고백한다. “성전을 위하여 준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이 내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므로 내가 사유한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드렸노니”(대상 29:3) 즉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드렸다는 것이다. 왕이 전심을 다하여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천지에 있는 모든 것이 주의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셨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대상 29:11) 이것은 헌금의 기본 정신이다. 내 것을 떼어 드리는 것이 아니라 원래 주인의 것을 잠시 맡았다가 돌려드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 드릴 수 있는 믿음과 마음조차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임을 고백하여야 한다. 그것은 내 마음에 즐거움이 있기에 그와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주의는 의무감으로 드리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게 된다. 헌신의 동기는 감사와 사랑과 기쁨이다. 다윗 왕의 감사 찬양에서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자신의 능력에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에 돌렸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

하나님의 설계도 “다윗이 이스라엘 모든 고관들 곧 각 지파의 어른과 왕을 섬기는 반장들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과 및 왕과 왕자의 모든 소유와 가축의 감독과 내시와 장사와 모든 용사를 예루살렘으로 소집하고”(대상 28:1)

  “다윗이 이스라엘 모든 고관들 곧 각 지파의 어른과 왕을 섬기는 반장들과 천부장들과 백부장들과 및 왕과 왕자의 모든 소유와 가축의 감독과 내시와 장사와 모든 용사를 예루살렘으로 소집하고”(대상 28:1) 다윗이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를 소집하여 솔로몬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하고 성령의 감동으로 받은 성전 설계도를 전수한다. 성전을 짓고 싶었지만 짓지 못하였고, 설계도조차도 마음대로 그리지 못하였다. 여호와의 손이 임하셔서 양식을 알려 주셨다.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 나에게 알려 주셨느니라”(대상 28:19) 왕은 회중에게 말하기를 나는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하나님이 막으셨다. 그러나 유다 지파에서 내 부친을 통하여 나를 택하시고 나의 아들인 솔로몬을 택하셔서 성전을 짓게 하셨음을 선포한다. 그러면서 백성들에게 너희의 하나님의 계명을 구하여 지키라 한다. “그가 만일 나의 계명과 법도를 힘써 준행하기를 오늘과 같이 하면 내가 그의 나라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대상 28:7) 그리고 솔로몬에게 권면하기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라 한다. 즉 지식으로 알고 순종할 것을 말한다. 즉 솔로몬에게 성전을 짓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을 깊이 알 것을 부탁한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통하여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제사와 예배를 드릴 때에 여호와께서 주신 성전의 설계도대로 하여야 한다. 목회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 선전을 마칠 때까지 여호와께서 떠나지 않으실 것이라 하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전은 사람의 아이디어로 설계되지 않고 성령이 주신 대로 지어졌습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시고 구속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끝을 맺으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계획을 따라야 합니다. 즉 바른 신학이 바른 교회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개혁주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