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삼상 24:6)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삼상 24:6)


사울은 불레셋과의 전쟁에서 돌아오니 다윗에 대한 정보가 있다. 다윗이 엔게디에 있다는 것이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쫓다가 돌아오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엔게디 광야에 있더이다 하니”(삼상 24:1)


그래서 전쟁을 치루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군사들을 데리고 엔게디 광야로 간다. 광야에 있는 굴 깊은 곳에는 다윗과 함께 하는 자들이 있었다. 사울은 용변을 보러 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에 다윗을 따르는 자들이 여호와께서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고 한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자기의 손으로 죽일 수 없다고 하였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삼상 24:6)


다윗은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잘랐다. 그리고 외친다. 다윗은 사울을 해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곹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삼상 24:11)


다윗은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사울에게 보복을 할 것이라 한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는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복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삼상 24:12)


이 말을 들은 사울은 목소리를 높여 울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진정으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울은 것이 아니다. 잠시 감정의 변화로 울음을 터트린 것이다.


사울은 지난 일에 대하여 양심에 부끄러움은 느꼈지만 유효적인 돌이킴의 회개는 아니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일시적인 부르심과 유효적인 부르심이 있다.


유효적인 부르심은 마음의 변화와 행동의 돌이킴이 함께 한다. 사울에게는 이와 같은 없었다. 그래서 이후에도 다윗을 추적하는 일을 계속하였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찍어서 불어 던진다고 하셨습니다.

즉 돌이킴의 행함이 없는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입으로만 외치고 행함이 없다면 열매가 없음을 말합니다.

열매를 맺으려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셔야 하고 나는 그의 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내가 주인이 되고 필요에 따라 예수님을 찾는다면 그것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사울은 입으로는 여호와를 외치고 있지만 그의 율법에 대하여는 무지하고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결국은 사울은 여호와를 따르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결과는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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