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마 18: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마 18:33)


본문의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질문을 하면서 시작이 된다. 주여 형제가 내게 잘못을 범하면 몇 번까지 용서를 해주어야 합니까?


이와 같은 질문을 하게 된 것은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베드로의 질문에서 내 형제라고 하였다. 형제라고 함은 같은 피로 속죄를 받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연결된 것을 말한다. 히브리 사상에서는 이웃을 같은 사상을 가진 형제, 자매라는 개념이 없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그의 안에서 형제이며 자매라는 것이다. 이제 그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가 있는데 그곳에서 범죄함이 일어나면 어떻게 용서를 해야 함을 묻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안에는 용서에 대한 법이 있다. 용서를 해주어야 하는 의무와 용서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금 일만 달란트 탕감을 받은 자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지 않으므로 다시 탕감이 취소되고 옥에 갇히게 되는 비유를 통하여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의 속성은 남을 용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직도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를 받지 못한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은혜를 받으면 용서의 자리에 함께 하게 된다.


백 데나리온 빚진 자는 엎드리어 간구하였다.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마 18:29)


그러나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는 그 동료를 용서하여 주지 않았다. 그런즉 용서의 의무를 알지 못하는 자가 됨으로 옥졸에게 넘겨지게 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베드로의 질문의 의도를 잘 생각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면 자신의 의도함으로 용서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 잘못된 생각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너희가 용서 받은 크기가 금 일만 달란트이다. 

그리고 너의 형제가 네게 빚진 것은 백 데나리온이다.

네가 탕감을 받은 은혜를 알면 네 형제의 빚을 용서해 주는 것이 당연함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은 용서를 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가 됩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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