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19:21)
 
욥이 받았던 고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다. 모든 재산을 잃었고, 열 자녀를 잃었고, 형제들로 외면을 하고, 친구들에게도 무시를 당하는 자리로 떨어졌다.
 
이 과정을 통하여 욥은 사람은 의지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받고 있는 시험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세 친구들은 스스로 심판자가 되어서 욥을 정죄하고 있다. 그러나 욥이 친구들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서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한다. “나의 친구야 너희는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나를 불쌍히 여겨 다오 하나님의 손이 나를 치셨구나”(19:21)
 
욥이 고난을 받으면서 믿음이 성장하였다. 그 고백의 내용은 나를 불쌍히 여길 대속자가 나타날 것에 대한 확신이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대속자가 살아계시니 마침내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19:25)
 
그리고 내가 비록 육신의 피부병으로 인하여 죽더라도 내 영혼이 하나님을 만난다는 확신이다. “내 가죽이 벗김을 당한 뒤에도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19:26) 결국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런데 욥이 확신하고 고백하였던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육신으로 오셨다.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구약에 등장하여 간절히 소망하며 간구하였던 믿음의 실체가 우리에게 사랑과 자비와 긍휼로 오신 것이다.
 
욥은 자신을 불쌍히 여겨 구원하여 주실 이를 찾은 것이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죄가운데 있는 죄인에게 찾아 오셨다. 욥이 그토록 소망하던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오셔서 구세주가 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욥을 불쌍히 여기셨던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구세주가 되십니다.
우리는 욥이 받았던 위로보다 더 큰 위로를 받은 것입니다.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까?
그 크신 사랑을 주셔서, 그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자로 변화된 것이 증거입니다.
사랑과 자비와 긍휼을 받은 자가 되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한 가지 꼭 조심하여야 할 것은 스스로 심판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심판장이 아니라 긍휼을 베풀어야 하는 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들릴지니라”(레 2:13)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 5:37)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 1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