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둣하나 다 보시느니라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하지 않으시는 둣하나 다 보시느니라”(11:11)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자기가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은 신앙인들에게도 해당이 된다.
 
욥기에 등장하는 세 친구들에게서 이와 같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들이 하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니라 부족하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지 못하면서도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것처럼 말을 하는데 문제가 있다.
 
소발이라는 사람은 하나님을 감찰하시는 분이라 한다. 맞는 말이지만 그보다 더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들에게 십자가에 내주실 만큼 사랑이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계명의 내용이다. 하나님의 법은 내 안에서 적용을 하고 이웃에게는 사랑으로 나가야 한다. 내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대하여야 하고, 이웃에게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위한 것이고 이웃에게는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반대로 생각을 하고 있다. 하나님의 법이 나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이웃에게는 엄격한 심판의 잣대로 적용을 하고 있다.
 
욥은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에게는 먹을 것, 마실 것, 맞이하여 주는 것, 헤어진 의복을 새것으로, 아픈 상처를 치료받는 것, 따스한 위로가 필요하다. 그러나 세 친구들은 사랑을 행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욥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하여야 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판단하거나 헤아릴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을 판단하고 헤아리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와 같이 행하게 된다면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욥기를 통하여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 친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욥에게 권면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욥이 세 친구들에게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같은 처지에 있습니다.
이웃이 나에게 충고를 하면 저나 잘하지 하며 받아들이지 않지만 반대로 이웃에게 충고를 할 때는 자신이 행하였던 모습을 까맣게 잊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있어야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기억하셔서 순종의 자리로 나가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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