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오니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와 인자와 그 이웃 사이에 중재하시기를 원하오니”(욥 16:21)
욥기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중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욥기에서 욥과 세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각 사람마다 하나님을 알고 있는 지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욥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론으로 변하여 격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욥은 자신이 시험을 당하고 있는데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고 한다. 그러나 세 친구들은 그들이 알고 있는 신학으로 판단을 하고 헤아리고 있다.
욥의 신앙은 우리에게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만나려 하는데 만날 수 없는 욥의 심정을 이해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보게 되면 죽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대화를 하지만 결코 위로를 받을 수 없고 오히려 경쟁과 시기가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소개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승복하는 사람이 없다.
이것에 대한 답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데도 중재자가 필요하고, 이웃을 사랑하는데도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은 잘남과 시기가 아니라 겸손과 자비이다. 욥의 마음은 다 갈라져 있다. 그리고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상처와 곪아 터진 상태이다. 다시 말하면 죽음의 문 앞에 있는 시체와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욥을 상대로 신학으로 논쟁하고 있는 세 친구의 모습이다. 지금 욥에게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 마음의 위로와 몸의 상처를 싸매주어야 한다. 세 친구들은 죽어가는 사람 앞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 욥에게 필요한 것은 상한 마음과 육체의 고통을 덜어줄 약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세 친구들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나의 자랑이 상대방을 더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시기와 질투를 합니다. 다른 이의 성공을 축하하여 주기가 힘듭니다.
왜 자랑을 하는가 하면 그래야 축하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은혜를 자랑을 하면 반대 현상이 일어납니다.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자리로 나아갑니다.
바로 그곳이 열린문 장로교회입니다.
우리들은 우리 개인의 자랑을 하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영광을 자랑하기 위한 공동체입니다.
사순절 기간입니다.
십자가의 길은 고난의 길이라고 하는데 아닙니다. 그것은 영광의 길입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누군가가 나에게 핍박을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처럼 침묵으로 일관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주님을 생각하시면 묵묵히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러시면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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