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고 꾸짖으시고


신자가 믿음의 생활 가운데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무언인가 하면 명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냥은 못하겠다는 것이다. 직위이나 직책을 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만일 교회 안에서 이와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면 세상에서의 명분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택하신 이유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가운데 고기잡는 어부가 있었다. 시몬을 베드로로 만들기 위함이었다. , 어부를 반석으로 만드시려는 목적을 가지신 것이다. 실수투성이인 베드로를 용서와 사랑으로 결국에는 반석을 만드셨다. 이것이 베드로를 구원하신 이유이시며 목적이 된다.
 
우리를 믿음으로 굳건하게 만들어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직분이나 봉사는 우리의 굳건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 위한 도구가 된다. 믿음의 됨됨이를 사람 앞에서 확인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확인 받아야 한다.
 
죄인을 구원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하여 그와 연합되는 것이 구원의 은혜이다. 구원의 은혜를 입은 자라면 그의 말씀에 순종을 하며 살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어 가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은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시고 세우신 교회 안에서 말씀에 순종함은 없고 오로지 명분에만 관심이 있다면 참으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고 고백케 하고 그와 같은 자로 만드신 것이다.
 
사도요한은 우레(천둥)의 아들이었다. 그는 성질이 불같은 사람이요 야심이 많았고 성급했던 사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사랑의 사도로 만드신 것이다.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획도 마찬가지이다.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 속에서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의 속성을 닮게 한다. 그래서 성령이 함께 하시는 자에게는 사랑의 성품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어떠한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가는지 알 수 있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와 비교하여 보면 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입은 자에게만 나타나는 것이다.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고 꾸짖으시고“(9:5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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