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교회를 출석하다고 해서 모두가 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오직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8:16), 즉 성령이 함께 하는 자만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기업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라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자가 있다. 아버지가 일을 하시니 나도 일한다. 내가 일을 하는 것은 아버지가 일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온 것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 하심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와 아들은 같은 일을 한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다. 상속자, 후사의 의미도 같은 뜻이 된다. 우리들은 유산을 상속받아 내 것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탕자가 되는 것이다.
 
15장에서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에서 맏아들과 탕자가 등장을 한다. 아버지가 돌아온 탕자를 기쁨으로 맞이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자 맏아들은 불만을 갖는다. 그에게는 염소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자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라고 하셨다. 다시 말하자면 맏아들이 하고 있는 일들은 곧 아버지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않고 자기의 쾌락을 즐기었던 자이었다.
 
우리에게는 맏형이 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던 우리 주님이시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을 하셨다. 성경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이런 의미를 말하고 있다. 즉 아들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죽기까지 순종하여야 함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단순한 입술의 고백이 아니다. 애교스럽게 익살스럽게 부름이 아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거룩을 지킬 수 있는 의지적인 믿음의 고백이다. 즉 아버지의 기업을 물려받을 수 있는 영안이 뜨인 자들과의 관계인 것이다.
 
맏아들과 아버지는 한 집에 있지만 탕자는 아버지를 멀리 떠난 자이다. 맏아들은 언제든지 아버지와 함께 하는 자이며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자이다. 우리의 맏형이신 주님은 아버지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십자가의 죽음도 기쁨으로 감당하셨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 주님과 같이 고난과 고통의 자리도 가야하고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고난과 환난을 통하여 그의 아들들을 정금과 같이 단련시키기 위함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징계를 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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