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몇 주 전에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 때문에 언론에서 뜨겁게 기사를 다루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에 관계된 사람들도 제 각기 입장을 발표하기도 하였는데, 오히려 논란만 더 키우고 분명한 뜻도 밝히지 못하고 흐지부지하게 시들어 버렸다.
 
사람은 자기가 아는 만큼만 말 할 수 있다. 즉 안다는 것은 믿음, 당위성, 진리를 근거한 것이다. 무엇을 알고 있다는 것은 믿음에서 시작을 하여, 그 믿음이 주장으로 이어지고, 당위성을 주장하는 데는 절대적 진리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
 
소위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각각 다르다. 정통교리를 주장하는 교파가 있고, 다름을 주장하는데도 있고, 전혀 다른 곳은 이단이라고 한다. 그러다보니 한 주제에 대하여 말들이 참 많다. 기독교파 안에서도 각각 다른데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에 오직한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 문제에 대한 올바른 답을 제세하기 위하여 성경의 말씀을 살펴야 한다. 해석의 오차의 범위를 줄이기 위하여 원어로 살피고, 그 당시의 역사, 경제, 문화, 정치적인 배경까지도 참고 하여야 한다. 즉 성경에 기록된 그 말씀의 본래의 뜻을 찾고자 함이다.
 
그렇다면 교회란 곳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즉 주님께서 피흘리시고 세우신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답변은 다양하다. 복 받는 곳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하는 곳이다. 착한 선행을 하는 곳이다 하면서 각 자가 아는 만큼만 말은 한다.
 
그러나 성경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진실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되는 곳이다. 이것을 비유로 말하면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고 신자는 그 몸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요구하는 만큼 몸의 지체가 따라야 함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자가 나아가야할 궁극적인 방향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의 말씀을 가르친다. 그 말씀을 잘 전하기 위하여 목사와 교사를 세웠다. 그래서 목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쉽게 잘 해석하고, 풀어서 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신자들은 그런 목사와 교회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교인들에게 서비스 잘하고 맛있는 음식을 주는 교회가 인기가 있다.
 
목회를 하고 있는 목사들도 자기가 알고 있는 만큼만 전할 수 있다. 그런데 목사들이 이 범위를 넘을 수 있는데 그것은 다른 목사의 설교를 카피하는 것이다. 목사가 말씀을 전할 때에 고통스럽고 불편한 것이 알지 못하는 것을 전할 때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목사는 말씀을 전하면서 힘들어 하며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한다는 것이다.
 
본인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뜻을 외친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는 이미 성경을 통하여 밝혀진 것이 있고, 하나님만 아시는 뜻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와 비밀과 지혜를 가르치는 곳이 교회이다. 이미 성경을 통하여 밝히신 뜻을 밝혀서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알려야 하는 책임이 있는 곳이다.
 
교회에서 전하여지는 말씀의 능력을 보고 천사들이 놀라고 세상의 왕들이 놀라야 함이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들의 믿음의 수준은 그렇지 못하다. “하나님의 뜻교회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있다.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고전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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