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012의 게시물 표시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이번 주에는 지진 , 태풍 , 자연재해와 경제위기에 대한 이야기로 소식이 전해졌다 . 이 세상 어느 곳도 안전한 곳이 없다 . 인간의 지혜와 과학으로 암반 위에 세운 도시가 뉴욕의 맨하탄이다 . 그런데 이곳이 하늘에서 내린 비로 인하여 몇 시간 만에 초토화 되었다 . 사람들이 놀랐고 낙심 가운데 있다 .   인간의 인생사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 내가 생각하는 대로 쉽게 되는 것이 없다 . 그 대표적인 것이 내가 배 아파서 낳은 자식이 내 말을 듣지 않고 ,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볼 때에 쉽게 이해할 수 있다 .   우리는 성경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쉽게 복을 받은 것으로 생각을 한다 . 그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세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 세상은 죄로 인하여 만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 땅이 저주를 받아서 엉겅퀴와 가시나무를 내기 때문에 그것을 걷어내고 푸른 채소를 심어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   세상이 주는 달콤함에 썩어가는 줄 모르고 살았다 . 좋은 세상 살기 편한 세상을 만들어 준다고 하며 온갖 종류의 선심과 제도를 만들어 갔다 . 그 속에서 놀다가 보니 큰 일이 난 것이다 . 대한민국 한 가정 당 빚이 1 억 정도가 된다고 한다 . 이제야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다 . 그래서 새 옷을 사기보다는 헌 옷을 수선하여 입고 , 신발도 고쳐서 신는다고 한다 .   지구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30~40 년 동안 잘 먹고 잘 살았다 . 갖고 싶은 것 갖고 ,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는 것이 행복인줄 알고 살았다 .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 찬 백성들에게 박수와 찬사를 받기 위하여 나라의 정책도 무상이라는 단어가 당연한 것이 되었다 . 그러다 보니 이제는 나라들이 거지가 되었다 . 그래서 나라가 돈을 빌려야 형편이다 . 이 문제에 당면한 나라가 하나 둘이 아니다 .   세상은 살기가 ...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기독교 교리에 선택과 예정이라는 것이 있다 . 이것을 이해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야곱과 에서가 태중에 있을 때에 장자가 아닌 차자가 선택을 받은 것으로 설명한다 . 즉 가업과 부족의 족장으로서 하여야 할 일을 장자가 아닌 차남을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신 것이다 . 그러나 야곱은 선택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순종을 하면 복이 저절로 임하는데 , 오히려 야곱은 인간의 생각으로 자신의 꾀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다가 어려움과 막다른 상황에 처하게 된다 .   이미 장자권이 야곱에게 있다는 것이 확정이 되었는데 , 야곱은 장자권을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을 주고 사게 되는 것이다 . 야곱의 생각대로 장자권은 쥐게 되었지만 이제 남은 것은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아야 한다 .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몸에 동물의 털을 두르고 아버지께 나아가 축복을 받는다 . 아버지와 에서를 속이므로 생명에 위협을 느끼게 되어서 삼촌의 집인 라반에게로 도망을 가게된다 .   그러나 도망을 가는 야곱을 하나님이 좇아가셔서 말씀하셨다 .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를 지켜주겠노라고 약속을 하셨다 . 그러자 야곱은 만일 나를 다시 고향의 집으로 돌아오게 하면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 제단을 쌓을 것이며 , 십일조를 드리겠다는 서원을 한다 .   20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서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 그러나 야곱에게는 커다란 고민과 걱정이 있는데 , 그것은 에서를 속이고 축복을 받은 것이었다 . 그래서 야곱은 자기의 지혜로 꾀를 짜내기 시작을 한다 . 처들과 자식들도 자기가 사랑하는 순서에 따라서 배열을 하고 많은 가축들은 떼를 나누어서 먼저 보낸다 . 그리고 혼자서 얍복 강가에 남게 되는데 그 이유는 에서와 사백인의 군사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   그런데 여기에서도 야곱은 자신의 생각으로 에서를 판단을 한다 . 장자권을 팥 죽 한 그릇에 판 에서는 물질인 가축을 좋아할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하나님에 대한 무지함이 세상 사람들의 철학이나 지혜나 총명 가운데에 나타난다 . 뉴 밀레니엄 (New millennium) 이 시작되는 2000 년에는 지구 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희망과 환희에 차서 다가올 미래를 바라보았다 . 그러나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나지 아니 하였지만 지구 곳곳에서는 폭발음과 총성이 멎지를 아니하고 점점 냉전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려는 분위기이다 .   그 동안 과학자나 지혜 있는 자들이 미래를 향하여 각 자의 지혜를 발표하였는데 , 중동지방의 석유전쟁으로 인하여 제 3 차 대전이 시작될 것이라든지 , 또 핵무기의 오작동으로 인하여 지구를 멸망을 초래할 것이라고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무서운 말들을 쏟아낸 일들이 있었다 . 그러나 저들이 예측한 대로 지구는 멸망하지 않았다 .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자들의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모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뜻에 따라서 지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믿고 우주만물을 다스리고 주관하시기 때문에 세상의 헛된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한다 . 이것이 세상이 주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도 평안과 안식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   간혹 세상의 과학자들이 전하는 말을 근거로 하여 신자들을 혼란 가운데 빠트리는 자들이 있다 . 그것은 잘못된 교훈과 가르침이 되는 것이다 . 이와 같은 자들과는 함께 친구도 되지 말고 또한 집안에도 들이지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은 어떠한 어려움과 환난을 맞이하여도 흔들리지 아니 한다 . 그 약속하심은 어떠한 경우에도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 노아의 홍수 사건을 기억한다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 수 있다 . 하나님이 명령하신 약속을 믿고 순종하며 따랐던 노아는 일백 이십 년을 방주를 짓는 일에 열중하였다 . 그러...

이는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하였기 때문이니라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에게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우리나라 속담에 십 년의 세월이 지나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 그런데 기독교 내부에서도 세상이 변하고 있으니 우리들도 변하여야 한다고 했던 적이 있다 .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면 아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 그러한 사람들에 의해서 세속적인 것들이 교회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 그래서 한 동안은 경제학을 전공한 학사 출신의 목사나 의사 출신의 목사들이 인기가 있었다 . 교회도 기업체처럼 성장과 부흥을 시키는 것이 능력이며 자랑이었고 , 병들고 육신이 연약한 자들에게 건강세미나와 의학상식을 전하므로 교인들을 건강하게 살게 하자는 주장이었다 .   그러나 인간의 선조인 아담의 타락 이후에 세상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 인류가 해를 거듭할수록 문명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에게 편리함과 안전한 사회적인 제도는 만들었지만 , 아직도 인간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생각과 대적을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   먼 옛날 바벨탑을 쌓아서 하나님과 비기려 하였던 사람들이 있었고 , 약 일백 오십 년 전에는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였다는 창조설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자가 진화론을 주장함으로서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은 지금도 진화론을 따르고 가르치고 있다 . 이와 같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의 속성은 자기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 하는 것이다 . 결국은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앉아서 영광을 차지하려는 자가 되려 한다 .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세우신 질서와 법칙이 있다 . 남자와 여자를 만드시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드셨는데 ,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남자끼리도 결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 이것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이다 . 그래서 세상이라는 곳은 하나님이 없는 곳이다 .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 하면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속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 자체가 핍박과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다 . 세상은 육신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알아야 할 기본적인 것들이 있다 . 먼저 하나님 나라에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고 , 통치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숙지하여 하고 ,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깊은 생각이 있어야 한다 . 물론 깊은 생각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   그의 나라 백성들은 왕의 권위와 은혜 아래에 있다 . 왕의 은혜를 받기 위하여 믿음의 행위를 하여야 한다 . 이것이 구제 , 기도 금식이다 . 그런데 은밀하게 조용하게 제 삼자가 알지 못하도록 하라고 하신다 . 하나님만이 듣고 알게 하라는 것이다 . 그러나 만일 이러한 것들이 사람들 앞에서 자랑을 하기 위한 것이라면 상급이 없다고 한다 . 아니 오히려 죄를 범하는 것이다 .   세상에서도 구제를 장려하고 있다 . 기독교는 고급한 종교이다 . 세상의 학문이나 이방종교의 도는 하나님 말씀과 비교할 때는 초등학문이다 . 즉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다 .   세상도 구제를 강요하는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의 어려움에만 관심이 있다 . 그러나 기독교의 구제는 어려움에 처하여 도움을 받는 사람의 인격과 영혼까지도 생각을 한다 . 도움을 주다가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즉 세상은 어려움에 대한 문제해결에 관심이 있고 , 기독교는 한 사람의 영혼과 인격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   사람은 아주 교만하다 . 그 교만함이 어느 정도인가하면 , 때로는 하나님도 마음에 들지 않고 , 하나님이 하시는 일도 틀렸다고 한다 . 그래서 하나님도 마음에 들지 않고 어느 것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 . 그러나 사람은 그러한 것들을 판단을 하거나 정죄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 사람은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기의 잘남을 나타내기를 좋아한다 . 그러다보니 누군가를 정죄하고 비판을 하여야 상대적으로 잘남이 ...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사람들은 만사형통이라는 단어를 아주 좋아 하는데 , 전에 이런 의미로도 쓰인 적이 있었다 . ‘ 모든 일은 대통령의 형을 통하면 다 된다 ’ 는 정치의 현실을 풍자하여 비꼬는 말이었다 . 그런데 신앙인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오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형통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다 . 그러나 구원의 약속은 새사람이 되었으므로 심령이 새로운 자가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과 가치가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   만일 우리가운데 누군가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서 절음발이가 되었다고 하면 아마도 난리가 날 것이다 . 브니엘을 체험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서 ‘ 복을 주시지 아니하면 보내드릴 수 없다 ’ 고 하며 씨름을 하게 되었다 . 야곱은 환도뼈의 관절이 어긋나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 그리고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다 . 그 이름의 뜻은 ‘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 이다 .   겨루어 이긴 자는 상대의 것이 내 것이 되는 기쁨을 누린다 . 결국 하나님의 복을 취한 자가 되었다 . 야곱은 하나님의 복을 취한 자가 되었지만 절음발이가 되었다 . 그러나 야곱은 그것에 대하여 불만을 갖지 않았으며 , 오히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는 자리로 더 적극적으로 나가는 자가 되었다 .   또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된다 . 그러나 바울의 앞길에는 우리들이 말하는 만사형통의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니라 온갖 여러 종류의 고난과 고통을 당한다 . 사십 대를 맞으면 죽기 때문에 한 대를 감하여 때리는 매를 다섯 번이나 당하고 세 번 태장으로 맞고 , 돌로 맞아 죽을 줄 알고 성 밖으로 버려지는 일을 당하며 동족 유대인에게 고소를 당하여 감옥에 가기도 하였다 .   그렇게 됨으로 사도 바울의 몸에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상처와 흉터를 지니게 된다 . 그러나 바울은 그 상처를 원망을 하거나 흉터에 대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