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심연에서 부르는 중보자의 이름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욥 9:3)

절망의 심연에서 부르는 중보자의 이름

“사람이 하나님께 변론하기를 좋아할지라도 천 마디에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하리라” (욥기 9:3)

1. 인간의 영적 세탁, 그 법정적 절망

욥은 하나님의 압도적인 주권과 초월성 앞에서 인간이 겪는 근원적인 한계를 직시합니다. 피조물은 창조주 앞에서 법적으로 자신을 스스로 변호할 수 없으며, 감히 죄 없다고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철저한 법정적 절망입니다.

욥은 고백합니다. 스스로 아무리 도덕적으로 완벽하려 애쓰고, ‘눈 녹은 물’과 ‘잿물’로 자신을 씻어내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거룩함의 기준 앞에서는 그저 ‘더러운 웅덩이에 빠진 자’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인과응보의 틀에 갇혀 있던 빌닷의 논리를 무너뜨리는 강력한 반박입니다. "정직하게 회개하면 의로우신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는 인본주의적 위로는 하나님의 공의 앞에서 설 자리가 없습니다. 바울의 선언처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율법의 행위로 그분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롬 3:10, 20).

2. 욥의 비명, 중보자를 향한 구속사적 요청

하나님은 인간이 아니시기에 대등하게 법적 공방을 벌일 수 없습니다. 이에 욥은 고통의 심연에서 하나님과 자신 사이를 중재해 줄 제3의 판결자를 구하며 절규합니다.

“우리 사이에 손을 얹을 판결자도 없구나” (욥기 9:33)

이 구절은 구속사적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필연성을 가장 강력하게 요청하는 장면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킬 수 없고, 그 의가 없이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수천 년 전, 욥이 고통 속에서 희미하게 비명을 지르며 그토록 찾았던 그 중보자의 실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5)

3. 양손을 잡으신 유일한 판결자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손과 인간의 손을 동시에 잡으실 수 있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성육신하신 주님은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심으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으셨고, 이제 그 완전한 의를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조건 없이 전가하여 주십니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죄로 얼룩진 우리를 깨끗이 씻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새 영을 부어주셔서 이제는 자발적으로 의로움과 거룩함을 행할 수 있는 존재로 빚어 가십니다.

4.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스로 의로워지려는 헛된 영적 세탁을 이제 멈추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을 의지하십시오. 사탄이 참소하고 정죄할 때, 혹은 세상과 이웃이 나를 비판할 때, 내 공로를 변호하려 하지 말고 나의 당당한 변호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면에 세우십시오.

욥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그분의 위엄과 진노의 막대기가 두려워 숨이 막힌다고 토로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중보자요 판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두려워 숨을 필요가 없습니다.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오늘 주님이 열어놓으신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걸어 나아갑시다(히 4:16).

엘파소 열린문 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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